알아서는 안 되는 일제시대의 진실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일제강점기의 실상

[2]-1 근본주의적 사고방식

[2] 민족주의의 함정에서 벗어나자  [2]-1 근본주의적 사고방식
앞서도 지적했습니다만, 한 나라가 잘못 세워졌다는 주장이 나라 밖이 아니라 나라 안에서, 그것도 명망 있는 학자들에 의해서, 심지어 대통령을 위시한 정치 지도자들에 의해서 제기되고 있음은 다른 나라에서 쉽게 찾을 수 없는 참으로 특이한 현상이라 하겠습니다. 이 지구상에 어디 그런 나라가 있습니까. 모든 나라는 자기 나라가 정의로운 역사에 기초해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한 역사의식을 자라나는 세대에게 애국심으로 심어 주고 있습니다. 나라의 역사를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쓰는 식으로 날조하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렇게 국가의 역사를 신성시하는 국가주의적 발상은 위험합니다. 그렇지만, 나라의 역사에 자긍심을 갖는 건전한 애국심의 국민을 교육하는 일은 국가에 부과된 포기할 수 없는 사명의 하나이지요. 국가가 잘못한 일이 있으면 숨겨서는 안 됩니다. 드러내고 비판을 해야지요.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회와 국가의 도덕 수준을 드높이기 위한 성찰의 일환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한국사회의 지도자들이 자기 나라가 잘못 세워진 나라라고 생각하는 데는 무언가 특수한 문화사적 내지 정신사적 배경이 있습니다. 저는 그 한 가지로서 19세기까지 지배적이었던 성리학의 영향을 들고 싶습니다. 성리학은 일종의 근본주의적 철학입니다. 거기서는 사물의 인과가 오직 어떤 근본적인 한 가지 요인으로 설명됩니다. 예컨대 지난 60년간 한국의 정치가 혼란스럽고 사회가 부패한 것은 애초에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그 좋은 예입니다.

최근에 어떤 영향력 있는 사람은 한국에서 아파트 투기가 자꾸 일어나는 것도 친일파 때문이라고 주장하였지요. 그런데 그런 명제들은 경험적인 자료로 증명될 수 없는 것입니다. 반증(反證)이 가능한 경험적인 근거 위에서 제기된 과학적인 명제가 아니지요. 그것들은 일방적이며 선험적이며 종교적입니다. 그러한 비과학적인 사고방식과 명제들이 큰 영향을 미치는 사회라면 제대로 근대화된 사회라고 할 수 없지요. 중세사회와 근대사회의 중간에 놓여 있는 과도기 사회이지요. 솔직히 말해 한국사회는 아직 근대화의 역사가 짧기에 이러한 과도기적 특질을 자주 보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보통의 한국인들에게 가장 친숙한 근본주의적 명제 하나를 들라면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주저하지 않고 우리 한국인은 유사 이래 반만년 전부터 하나의 민족이었다는 한국의 민족주의, 그것을 들겠습니다. 민족의 분단을 초래했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건국은 처음부터 잘못이라든가, 통일이 되기 전에는 역사는 미완성이라는 식의 《인식》의 주장도 크게 보면 다 민족이라는 근본주의적 명제에서 파생하는 것입니다. 이들 주장에서 알 수 있듯이 현대 한국에서 민족은 국가보다 더 높은 자리에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상 국가를 부정하는 이야기가 민족의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습니다만 보통의 한국인들은 그에 대해 별로 이상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만큼 오늘날 보통의 한국인들은 대한민국의 국민이기 이전에 한민족이란 민족의 일원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저도 젊은 시절에 몇 번 경험했습니다만,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란 노래를 부르면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대학시절에 그 노래를 부르면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통일의 전사가 되겠다고 속으로 맹세했습니다. 저의 이러한 체험은 보통의 한국인이면 누구에게나 한두 번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감히 이야기합니다. 그러한 근본주의적 열정과 감성의 체계로서 민족주의는 대한민국을 세계의 선진사회와 선진국가로 발전시키기에 역부족이며, 자칫 잘못하면 대한민국의 선진국 진입을 가로막는 역사의 족쇄로 작용할 위험성이 크다고 말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제부터 그에 대해 차분히 생각해 봅시다. 우선 민족이란 무엇입니까. 세계 곳곳에는 수많은 민족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 모두에 합당한 민족의 정의를 내리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일찍부터 여러 사람이 그런 시도를 해봤지만 모두 실패하였지요. 그래서 우리 사회의 통념에 따라 다음과 같이 간단히 정의하도록 합시다. 민족이란 단일 인종으로서 단일 언어를 쓰고 단일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가지면서 스스로 공동의 운명공동체라고 믿는 주민 집단이라고 말입니다. 이러한 집단의식은 그에 상응하는 상징이나 신화를 발달시킵니다. 신화는 대개 민족의 성립과 관련된 건국신화인 경우가 많습니다. 예컨대 우리 한민족은 하늘에서 내려온 환웅의 아들 단군의 자손이다. 우리는 한 핏줄, 곧 한 겨레이다. 바로 그런 것 말입니다.

오늘날 보통의 한국인들은 이러한 민족의식을 너무나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과연 5천 년 전부터 한국인은 하나의 민족으로서 하나의 공동체였을까요. 막상 이렇게 따지고 물으면 아무도 확실하게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모두 그렇게 믿고 있지요. 그것이 바로 민족이 지닌 신화로서의 힘이지요.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결론을 미리 말하자면, 오늘날 한국의 민족주의는 20세기에 들어와 일제의 억압을 받는 고난의 시기에 생겨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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