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는 안 되는 일제시대의 진실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일제강점기의 실상

52 이와쿠라사절단(岩倉使節團)과 정한론(征韓論)

4-2 메이지유신 (明治維新)  52 이와쿠라사절단(岩倉使節團)과 정한론(征韓論)
[ 이와쿠라사절단 ]
1871(메이지 4)년 폐번치현 후에 신정부(新政府)로서 정식으로 조약 체결국을 방문하고, 동시에 조약개정의 예비 교섭을 하기 위해 전권대사 이와쿠라 도모미(岩倉具視)를 대표로 하는 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通), 기도 다카요시(木戶孝允) 등의 사절단이 미국과 유럽으로 파견되었다(이와쿠라사절단[岩倉使節團).

사절단은 유학생을 포함해서 전체 110 명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사절단은 2년 가까이 구미 문명을 현장에서 습득한 결과, 구미와 일본의 문명의 진보 차이 를 약 40년으로 어림잡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근대 산업의 확립(부국[富國])을 우선으로 해서 구미를 따라잡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와쿠라사절단이 본 세계>
(구메 구니타케 『미구회람실기(米歐回覽實記)』에서 발췌 요약)
◆유럽에서 「의원을 선거로 뽑고 법률을 모두가 함께 의결하는 것은 공평한 것 같지만, 이견(異論)이 나와 다수결로 정하면 대부분 좋은 안은 통과되지 않는다」 「영국이 풍요로운 것은 민중이 열심히 일을 하기 때문이다」
◆아시아에서 약자의 살은 강자에게 먹히게 된다. 유럽인이 멀리까지 항해하게 되면서 열대(熱帶)의 약한 나라는 유럽인들이 다투어 먹는 바가 되었다.

[ 정한론 ]
그런데 국내에서는 1873(메이지 6)년 일본의 개국 권유를 거절해 온 조선의 태도를 무례하다고 하여, 사족(士族, 역주: 메이지유신 이후 옛 무사 계급에게 주어진 신분)들 사이에 무력을 배경으로 조선에 개국을 강하게 요구하는 정한론이 일어났다. 폐번(廢藩, 역주: 번 제도의 폐지)으로 실업한 사족들은 징병령이 시행되었기 때문에 무사의 자부심에 상처를 입었다고 하여 불만이 높아가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조선과의 싸움으로 자신들의 존재 의의를 보여주려는 자도 있었다.

그들이 기대를 건 것은 사절단의 부재 동안 업무를 담당하고 있던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였다. 사이고는 정부에서 근대 국가를 만드는 개혁을 추진하면서도, 사족들의 정신도 중요하다고 생각해 그들의 사회적 역할과 명예를 지켜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이고는 자신이 사절단으로서 조선에 갈 것을 강력히 주장했고, 이타가키 다이스케(板垣退助), 에토 신페이(江藤新平) 등 다른 참의(參議)도 이에 동의하여 정부의 결정을 얻어냈다. 사이고 자신은 전쟁을 각오한 교섭으로 조선에게 문호를 열게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 정부의 분열과 세이난전쟁(西南戰爭) ]
그러나 구미 각국의 강대한 군사력을 목격하고 귀국한 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通)와 이와 쿠라 도모미(岩倉具視)등은, 국력의 충실을 먼저 기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출병은 구미의 간섭을 초래한다고 우려하였다. 이에 이들은 조정과 정부 부내(部內)에 공작하여, 각의에서 정식으로 결정된 사이고(西鄕)의 사절 파견을 연기하였다. 이에 화가 난 사이고와 에토 신 페이(江藤新平), 이타가키 다이스케(板垣退助) 등은 정부의 관직을 사임하였다. (*1)

1876(메이지 9)년 정부는 일시금 급부를 지불하여, 구번(舊藩)을 대신하여 정부가 사족에게 급부(給付)하고 있던 녹(祿, 역주: 급여)을 중단하였다. (질록처분[秩綠處分]) 이에 불만을 가진 각처의 사족이 정부에 반대하여 군사를 일으켰지만 진압되었다. 사이고는 가고시마 (鹿兒島)로 돌아가 사학교(私學校)를 열고 있었는데, 불만을 가진 전국의 사족은 사이고에게 기대를 하였다. 1877(메이지 10)년, 가고시마의 사족들은 사이고를 지도자로 해서 거병 하였지만 징병된 평민들로 이루어진 정부 군대에게 패하였다. (세이난[西南]전쟁) 이후 사족들의 무력에 의한 저항은 종언을 고했다.

(*1) 이 뒤에 일본은 1875년 조선의 강화도 앞바다에 군함을 파견하여 무단으로 주변의 연안을 측량하는 등의 압력을 가하였기 때문에, 군함이 포격을 당하여 교전하는 사건이 발 생하였다 (강화도사건). 이것을 이유로 일본은 다음해인 76년에 일조수호조규(日朝修好條規) 를 맺어 조선을 개국시켰다. 이것은 조선에게 있어서 불평등한 조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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