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는 안 되는 일제시대의 진실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일제강점기의 실상

[4-7] 바보들의 행진 p437

한국, 중국, 대만 학자들에게는 일본의 교과서를 검증할 만한 힘이 없다. 이들의 역사에 대한 학력은 매우 낮다 (대만출신 평론가 고분유)

정말 그렇다고 생각한다 (니시오 회장)

일본은 한국과 중국에 대해 불만을 얘기해도 전혀 이익이 안 된다. 두 나라에는 민주주의와 언론자유가 없고 감정만이 있기 때문에 논의가 안 된다 (만화가 고바야시 요시노리)

이번에 우리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한 것은 큰 돌파구를 연 것이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리는 데 있어서 국민운동이 승리한 것이다 (다쿠베 다다오. 이사)

이는 2001년 봄 일본의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주최한 심포지엄에서 나온 말들이다. 이를 두고 한국의 언론에서는 "일본 우익들의 자축파티에서 한국과 중국을 비하하는 망언들이 쏟아졌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제3자의 입장에서 볼 때 이들의 발언에는 생각해볼만한 점이 많고, 어떤 측면에서는 오히려 이번 교과서 파동의 본질을 지적한 것으로 생각된다. 한국의 언론은 조국의 역사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일본인들에게 극우파니 보수 우익이니 하는 용어를 갖다 붙이면서 마치 이들이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이거나 히틀러 같은 파시스트나 되는 것처럼 매도하곤 하는데, 이것이 과연 공정한 자세인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위의 발언을 한 사람들은 모두 일본에서 매우 존경받는 수준 높은 지식인들이다.

실제로 한국이나 중국의 역사학자들은 스스로 국제수준에 걸맞는 사고의 능력이 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동아시아의 근대 역사에 관한한 이들은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것으로 보이며 혹 진실을 인식하고 있는 경우에도 민족주의 세력의 폭력에 희생당할까 두려워 입을 열지 못하고 있다. 또한 한국의 언론들은 일본에서 자기네 입맛에 맞지 않는 발언이 나오면 항상 망언이라고 매도하는 버릇이 있다. 자기 생각과 다르면 남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려고 시도하지도 않고 쉽게 망언이라고 하는 것이다. 어쨌건 한국이 한참 후진국인 중국과 같은 수준에서 비난을 받고 또 그러한 비난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일본은 학문과 교육 언론 등이 오랜 역사를 거쳐 제자리를 잡고 균형을 갖춘 선진국이다. 이 같은 사회에서는 수준 높은 국민들이 누구나 양심에 따라 신중히 판단하고 자기 생각을 말하기 때문에, 이미 한국이나 중국에서 비판할 수 있는 정도의 심각한 역사의 왜곡이나 오류가 존재하기 힘들다. 그 결과 역사의 해석을 둘러싼 논쟁에서 일본인들은 준비가 잘 되어 있는 반면 한국인들은 사사건건 이기적으로 트집을 잡는다는 인상을 국제사회에 심어주고 있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논쟁에서 자신들이 고립되어 있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언론의 자유가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최근 일어난 2001년 8월13일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 문제에 관해서도 한국과 중국의 항의에 관해서만 보도할 뿐, 미국이나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일본 측 입장에 공감하는 국제 사회의 지지 분위기는 보도하지 않고 있다. 일본인들의 의견에 대해서도 한국인의 입맛에 부합되는 사람들의 말만 되풀이되어 방송될 뿐 일본 주류의 움직임은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다. 그 결과 당연히 한국인들은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어 있으며 우리는 제대로 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한중일 3국 사이에는 1982년에도 지금과 비슷한 교과서 파동이 있었다. 그때에는 '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가 펴낸 <신편일본사>가 문제가 되었다. 당시 이 책의 내용에 대해 한국과 중국 정부가 시정을 요구하자 1982년 7월 23일 마쓰노 국토청장관, 7월 24일 오가와 문부상 등 일본 정부의 각료들이 나서 "교과서 검정은 내정문제이기 때문에 한국과 중국의 시정요구는 내정간섭이 될 수도 있는 것으로 가당치 않다" 는 취지의 발언을 하였다.

이후 교과서 파동은 장기화되어 1986년에는 문부상 후지오는 "일본의 교과서 왜곡에 대한 불만을 말하는 놈(야쓰)들인 한국과 중공은 세계사 속에서 그 같은 일을 한번도 안 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 이라고 직언을 했다. 후지오는 이어 그 해 9월 6일 <문예춘추>지와의 인터뷰에서 "한일합병은 형식적으로나 실질적으로 양국의 합의 위에 성립됐다. 한국 측에도 얼마간의 책임은 있다" 고 발언했다.

지금 보면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 이 발언에 대해 한국 정부에서 발끈하여 규탄운동이 일어났고 일본 내에서도 비판이 많았다. 일본에서 이 같은 직언을 비판하는 까닭은, 패전국 일본에 만연하고 있는 자학사관 때문이다. 일본은 패전국으로서 오랜 세월동안 미국의 식민지라는 지위에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역사를 비하하는 데에만 능통할 뿐 아직 스스로의 역사를 제대로 보고 자부심을 갖는 단계에는 도달해 있지 못하다. 결국 야당은 후지오의 사임을 요구하였으며 이에 대해 후지오는 자기 뜻을 굽히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파면을 자청, 9월 8일 나카소네 수상은 후지오를 파면시켰던 것이다.

이 문제는 이후 후지오의 입장을 지지하는 자민당의 젊은 의원들에 의해 <국가기본문제 동지회>가 결성되고, 그 대표인 가메이 의원 등이 1986년 10월 23일 주일한국대사관을 방문, 이규호 대사에게 "현재처럼 중공과 한국이 교과서문제, 야스쿠니신사 참배문제 등에 간섭하면 스트레스가 쌓여 10년, 20년 후 한일 간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는 협박성 발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사실 후지오까지는 이해한다 해도 마지막인 가메이의 전쟁협박성 발언은 다소 지나쳤던 것 같다. 이 발언은 나중에 가메이가 그런 말을 한적 없다고 부인함으로써 유야무야 되었지만 이 사건은 일본의 뜻있는 인사들이 주변국의 내정간섭에 대해서 얼마나 분개하고 있는가를 잘 보여준 사건이었다.

당시 일본은 말 그대로 떠오르는 태양의 제국으로서, 머지않아 미국을 제치고 세계 제1의 경제대국이 될 것으로 전망되던 잘 나가는 나라였으며, 한국과 중국은 아직 답답한 군사독재를 벗어나지 못한 사회였다.

그 뒤 15년이 흘러 이제 일본은 역사상 경험해보지 못한 장기불황에 시름하고 있고 중국은 서서히 아시아의 맹주로 부상하면서 장래 미국과의 패권 다툼을 준비하는 처지가 되었다. 한국도 어두운 군사독재의 시대를 벗어나 어느 정도 개명된 민주사회의 모습을 갖추어 가고 있다. 이처럼 시대상황이 달라졌는데도 과거사 문제를 둘러싼 한중일의 다툼은 20년 전과 비교해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이 똑같은 순서를 되풀이하고 있다. 한국과 중국은 언제까지 일본에 대해 트집잡기를 계속할 것인가. 최소한 한국만이라도 어서 빨리 이 바보들의 행진에서 발을 뺄 수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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