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는 안 되는 일제시대의 진실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일제강점기의 실상

[4-6] 가미카제의 후예들 p432

가미카제만큼 일본 정신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용어도 드물 것이다. 가미카제는 神風을 일본식으로 읽은 것으로, 신의 바람이라는 뜻이다. 과거 13세기 고려와 몽골 연합군이 일본을 침공하기 위해 두 차례나 연합함대를 구성, 상륙을 시도했지만 태풍으로 인해 일본 땅에는 발도 들여놓지 못했다는 역사 기록이 있는데, 이때 일본인들은 그것이 일본을 지켜준 바람이었다고 신풍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당시 려몽 연합함대를 괴롭힌 것은 지금의 태풍인데, 고려도경이라는 책에 기록된 함대의 출발 장소가 지금의 홍콩 근처인 것으로 보아 당시 일본은 필리핀 북부나 대만에 위치하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 가미카제를 일본은 태평양전쟁 말기 공군 자살특공대의 이름으로 사용했다. 이름이 갖고 있는 신비함 때문인지 수많은 일본 청년들이 이 특공대에 자원, 미국의 군함을 향해 몸을 던졌다. 당시 사망한 가미카제 특공대원은 1030명이었으며, 이 가운데 조선인은 11명이었다고 한다. 비록 1%에 불과했지만 이는 태평양전쟁이 일본만의 전쟁이 아니라 조선과 일본이 함께 싸운 전쟁이었음을 상기시켜준다.

4시경 나는 만 전체가 한눈에 보이는 산 위에 있었다. 거대한 함대가 저무는 해를 배경으로 섬뜩한 실루엣을 드러내고 있었다. 돌연 짙은 검은 구름이 선단을 덮기 시작했고, 멀리서 울리는 우뢰와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그 구름은 대공포화 연기였다. 곧이어 반점 같은 것 몇 개가 하늘의 이 구석 저 구석으로부터 연기구름 속으로 쏜살같이 달려 들어갔다. 우리의 자폭기들이었다.

"가미카제 공격이다." 난 지나가는 병사들에게 외쳤다. 병사들이 달려왔다. 까만 반점이 연기 속에서 날아들었고, 뒤이어 또 하나 그리고 또 하나, 공격은 10분간 계속되었다. 차츰 연기는 걷혔고, 나는 멀리 몇 척의 선박이 불길에 휩싸인 것을 어슴프레 볼 수 있었다. 이러한 공격이 꼭 필요한 것일까? 나는 자문하였다. 저 큰 함대 속에서 배 몇 척을 격침시키는 것이 젊은이들의 목숨을 희생시킬 만큼 가치가 있는 일일까? 자원을 했건 안 했건, 그들과 그들의 부모는 다 같이 이 무모한 전쟁의 희생자인 것이다.

"저것이야말로 고급장성들이 생각해 낼 수 있는 가장 저주스럽고, 가장 치졸한 짓이야!" 한 병사가 분개해서 말했다. (일본군 하사관 오가와 데쓰로. 필리핀 루손섬에서)

가미카제 특공대는 위의 병사가 있었던 필리핀 방어전에서 처음 선을 보인 뒤, 1945년 초 오키나와 방어전에서 대부분의 특공대가 투입되었다. 당시 맥아더가 이끄는 미군은 호주군과 함께 과달카날 상륙작전을 거쳐 뉴기니를 탈환하고 필리핀, 대만, 오키나와 등으로 북상하고 있었다. 오키나와가 점령되면 여기에서 출격한 미국의 폭격기들은 곧바로 일본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거리에 들어오기 때문에 일본은 오키나와 방어에 총력전을 전개했다.

태평양전쟁에서 가장 잔혹했던 전투로 기록된 오키나와 점령전은 1945년 4월 1일부터 6월 중순까지 약 3개월 동안 계속되었다. 이 전투에서 미군 해병 2만 명이 전사했고 오키나와 섬의 건물 90%가 파괴되었으며 오키나와 주민의 절반 이상이 사망했으니 그야말로 생지옥과도 같은 전투였다.

당초 가미카제 특공대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미국의 항공모함을 잡는 것이었다. 비록 항모를 격침시키는 데는 실패했지만 가미카제 특공대는 30척 이상의 미국 전함을 침몰시키고 300척이 넘는 전함을 파괴하는 엄청나나 성과를 거뒀다. 인류의 전쟁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이 자살공격은 당시 일본과 전쟁을 하고 있던 서양인들에게는 믿을 수 없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로 인해 가미카제는 영어에서 무모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칭하는 명사로 자리 잡게 되었는데, 예를 들어 '아유 워너 비 어 가미카제?'라고 하면 무모한 일을 하다 죽고 싶냐는 뜻의 문장이 되는 것이다. 돈키호테와 비슷하지만, 약간 더 강한 의미를 지닌 용어라고 하겠다.

루손 섬에 있던 위의 일본 병사가 말한 것처럼, 100% 죽음이 확실한 자살공격으로 조종사들을 몰아넣는 것은, 전쟁의 승리라는 목적을 위해 젊은이들의 생명을 수단으로 삼는 치졸한 짓이다. 하지만 전쟁 자체가 어차피 생명을 단순한 숫자로 계산할 수밖에 없는 비인간적인 행동이며, 적에게 타격을 가할 수 있다면 부하들을 서슴없이 희생시킬 수 있는 결단력이 전쟁지휘관의 미덕인 것이니 가마카제에 대해 휴머니즘의 잣대를 갖다대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이다.

비록 서양인들에게는 미친 짓으로 보였겠지만 이 가미카제의 정신은 집단을 위해 개인을 희생하는 일본 특유의 미덕을 상징적으로 구현한 것이다. 2001년 5월 일본에서는 이 가미카제 특공대의 이야기를 담은 '호타루'라는 영화가 개봉되어 많은 관객을 끌기도 했다. 이 영화는 당시 일본공군의 소위로서 가미카제 특공대가 되어 전사한 조선인 김선재와 살아남은 특공대의 삶을 묘사한 것이다.

이 영화에는 김선재가 출격 전날 식당에서 고향의 노래 아리랑을 부르고 이를 듣고 있던 일본인들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 영화는 최근 한국에서도 개봉되었으나 한국 사회의 우경화 분위기 탓에 많은 관객을 모으지는 못했다.

스스로 가미카제 특공대가 되어 산화한 김선재 소위처럼 일제시대 우리 조상들 가운데에는 일본을 조국으로 생각하면서 자발적으로 일본을 위해 싸웠던 사람들이 많다. 지금은 비록 다른 나라로 갈라졌지만 이 같은 사실은 해석하기에 따라서 한국과 일본의 친선을 위해 도움이 될 수도 있는 것인데, 한국에서는 이들을 비난하며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현재 일본 수상으로서 일본국민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고이즈미는 스스로 가미카제의 후예임을 자처하는 인물이라고 한다. 그의 고향은 일본의 최남단 가고시마인데, 이곳은 과거 가미카제 특공대의 비행장이 있던 곳이다. 그는 자주 이곳에 들러 특공대원들의 글을 읽고 그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린다고 고백한 바 있다. 또한 고이즈미는 힘든 일이 닥칠 때마다 가미카제 특공대원들을 생각하며 힘을 얻는다고 했다.

이처럼 가미카제의 후예인 고이즈미가 일본을 이끌어 가는 수상이 된 후 그들이 안치되어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이웃으로서, 과거 대동아 전쟁에 참여해 함께 싸웠던 우리가 이 같은 일본의 행사에 박수를 쳐 줄 수도 있는 것이니 오늘날 이를 항의하고 비난한다는 것은 볼썽사나운 일이다.

고이즈미는 과거 무능했던 일본 총리들과는 달리 가미카제의 후예답게 용기 있고 과단성 있는 정치인으로서, 일본 유권자들에게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최근 열린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고이즈미가 이끄는 자민당에 절대다수 의석을 몰아줌으로써 고이즈미 개혁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대영제국의 영광을 부활시키고 있는 토니 블레어, 미국의 10년 호황을 이끈 빌 클린턴에 이어 일본도 드디어 제대로 된 지도자를 찾은 것일까. 아직도 늙은이들의 손에 휘둘리며 구태의연한 낡은 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를 볼 때 일본의 이 같은 변화는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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