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는 안 되는 일제시대의 진실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일제강점기의 실상

[4-4] 유학생의 편지 p408

저는 미국에서 생활한지 몇 년 정도 된 유학생입니다. 나이는 허송생활을 좀 한 관계로 이십대 후반입니다만 아직도 학교에 몸담고 있습니다. 대학원 과정도 아닌 학부 과정을 말입니다. 그 점에 대해선 저도 참 한심하게 생각하고 있는 바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저는 무엇을 여기서 말씀드리고 싶은 걸까요. 저는 인종의 전시장이라고 불리는 미국에서, 그것도 가장 많은 인종이 들끓는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하고 있는 관계로 각 인종간, 국가 간의 오묘하고도 겉으로 함부로 들춰지지 않는 관계에 대해 많은 고찰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미국 대학에서 여러 강의를 듣습니다. 얍삽한 방편으로서 제가 학과수업 및 시험에서 득을 볼 수 있는 과목들을 많이 듣는 편입니다. 예를 들면, 아시아 국가들의 관계라던가, 중세부터 근대까지의 동아시아 국제관계, 중세와 근대의 일본, 근대 중국문학 등등이 있지요. 저는 한국에서 자라고 대학 2년까지 공부하다가 군대를 다녀온 인간으로써 완전한 한국 토종입니다. 고로 아시아 관계의 학과들은 다른 미국 학생들에 비해 상당한 이득을 보고 시작하는 것이지요. 물론 미국서 자란 아시아계 학생들보다도 말이죠.

그런데 문제는 말입니다. 이 미국 교수들이 가르치는 학과내용이 이제껏 제가 배웠던 내용과 교묘한 차이점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교묘한 차이점, 그렇습니다. 전체적인 내용은 한국에서 배운 역사나 정치, 사회 등의 내용과 별반 다른 점이 없습니다만, 교묘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간단한 예로, 고려시대 왜구가 창궐하여 한반도를 비롯, 중국 동부 연안 지방에까지 출현하여 양국에 공포의 대상이 되었으며, 한국의 왕이 일본의 황제에게 칙사를 보내어 간청하기를 제발 왜구의 창궐을 억제해달라고 하였다는 내용이 백인 교수의 입에서 나옵니다.

사실 제가 학교에서 한국사를 배운 것이 벌써 약 8년여 전의 일이므로 확실한 기억은 없습니다만, 대부분 맞는 내용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교묘한 어감의 차이로 인해 모든 관계의 이미지 자체가 흐려지는 상황입니다. 왜구가 공포의 대상이었다. 대략 맞는 말이죠. 그런데 그 이후. 한국의 왕이 일본의 황제에게 운운하는 부분은 말입니다. 역시 맞는 호칭이지만, 어감으로 볼 때, Korean King 이란 말과 Japanese Emperor에서 상하 관계의 이미지가 형성됩니다. 왕은 황제의 한 단계 아래란 뜻이죠. 왜구의 억제를 사절단을 보내 간청했다는 문장도 마찬가지 예입니다.

왜구의 본거지였던 쓰시마 섬을 정벌했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최무선이 송나라에서 화약을 들여와 화포를 제작 왜구 소탕에 성과를 거두었다는 내용도 없습니다. 백인 교수는 "어느 시점에서 갑자기 왜구가 줄어들기 시작했는데 이유는 모르겠다." 고 말을 마쳤습니다. 이쯤 되면 그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한마디로 별 볼 일 없는 한국의 왕이 대 일본 황제에게 제발 일본 해적들의 자제를 부탁했다고 그 결과 왜구가 사라졌다는 정도가 되겠습니다. 왜구를 영어로는 WAKO 라고 표현하는데 교수도 누구도 뜻은 모르고 단지 일본 해적을 칭하는 말로만 알고 있습니다. 일본의 개들이 정답이죠.

그리고는 한마디 끝에 덧붙이더군요. 몇 년 전 한 한국 학생이 자기 수업시간에 한 말에 의하면 한국 국정교과서에서 왜구의 침략이 250회가 넘는다고 학생들에게 가르친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더니 "여기 한국 학생 있나?" 하고 말해서 제가 손을 들었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저 영어 잘 못합니다. 수업시간에 발표를 하려면 머릿속에서 생각을 정리해야만 하는 수준인지라 긴장이 되더군요.

"나는 한국의 정부가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관계에 대해 학생들에게 과장된 역사를 가르친다고 생각하는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라고 대뜸 묻더군요. 약 50여명 되는 학생들의 눈길이 긴장한 저에게 집중되었습니다. 헌데 그 교수의 질문이 머릿속에서 처리되자 저는 분노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해가 되시겠죠? 왜 제가 갑자기 온몸에 휘감겨 오는 분노를 느꼈는지.

한마디로 한국 정부가 역사를 왜곡한다는 겁니다. 저는 얼굴이 붉어진 채로 더듬더듬 말을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역사를 과장해 교육시키고 있지 않다. 이차대전의 예만 봐도 알 듯이 전쟁 피해국인 한국과 중국 그리고 동남아시아 여러 국가들의 확인된 역사가 과장된 기록이더냐. 역사는 사실이며 과장된 교육을 할 필요가 무엇인가 등등 이런 말을 했던 것 같습니다. 제 분노에 찬 그렇지만 조용조용 내뱉는 답변이 끝나자마자 그 백인 교수가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I still think Korean Government is exaggerating the history." (그래도 나는 한국 정부가 역사를 과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아, 이게 웬 일입니까. 그 백인 교수의 한마디로 인해 저는 일개 일본 식민지국의 일원으로 치부되어 피해망상적인 발언을 해대는 열등감에 사로잡힌 한국인이 되어버렸습니다. 저를 응시하던 50여명의 백인, 흑인, 히스패닉, 그리고 각종 아시안계 미국인 학생들의 머릿속에도 그렇게 각인되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들은 아시아학 박사학위가 빛나는 백인 교수의 지식과 권위를 한 일개 유학생의 졸렬한 언변보다는 훨씬 신뢰할 테니까요. 그것도 일본 시다바리(쫄개)인 한국인인데 말이죠.

수업은 끝나고 남은 건 저의 분노와 수치감뿐이었습니다. 일본의 모든 것에 숭배의식을 가지고 있는, 그러한 편파적인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땄을 백인 교수에 대한 분노. 내 나라에 대한 역사도 확실히 꿰뚫지 못해 미국 수업시간에 제대로 내 나라를 변론하지 못한 제 자신에 대한 수치감. 정말이지 그로부터 약 이주일간은 밤이면 밤마다 억울함과 수치심으로 잠을 못 이뤘을 정도였습니다. 저는 과연 진정한 애국자일까요? 아니면 극우로 치부될 수도 있는 민족주의자일까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한가지 분명한 건 저는 한국인의 전형이라는 것입니다. 그저 평범한, 어찌 보면 객관성을 지닌 중간자적 입장(Neutral Position)을 고수하려 노력하는 열린 가슴을 소유했다고도 자부하던 한 사람의 인간입니다.

그러나 과연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독자 분들이 제 상황에 처했더라면 어땠을까요. 지금은 물론 피부로 느끼지 못하므로, "이런 쫌생이 같은 놈, 그러게 실력을 키우라니까" 라며 핀잔을 주시는 분도 계시리라 믿습니다. 하지만, 제가 분노하고 수치심을 느끼는 것이 과연 그 반 일본인 (Japanese Wannabe) 백인 교수의 수업 때문 만일까요. 아닙니다. 이것은 극히 단편적인 일례에 불과합니다. 그만큼 내나라 대한민국의 이미지는 실추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 정부가 역사를 과장하여 가르치고 있다니요. 이게 웬 마른하늘에 날벼락입니까. 혹자는 "아무래도 미국은 제 삼자이니까 한국이나 일본의 직접적인 역사 공방보다는 객관적인 사료와 견해를 가지고 있을 것이므로 한국 정부가 과장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라고 하실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과연 그럴까요. 아닙니다. 그 교수는 아시아 정세와 관계, 역사의 모든 것을 일본서 공부했습니다. 중국에 몇 번 방문하고, 한국에 한번 세미나 차 방문한 것이 일본 밖에서의 공부의 전부였습니다. 동남아 몇 개국을 관광했었다고도 하더군요. 이제 문제가 무엇인지 확실해지십니까. 예. 당연합니다. 일본에서 일본인이 영어로 번역한 아시아 역사를 공부한 사람인 것입니다. 당연히 일본 중심의 역사를 배우고 그걸로 박사학위를 딴 것입니다.

한 가지만 저의 사사로운 예상을 집어넣어 볼까요. 그 교수는 한국과 한국인을 싫어합니다. 왜냐구요. 자신이 공부하고 존경하고 사랑하는 대 일본에 항상 딴지를 걸고 시비를 거는 세계에서 거의 유일한 나라이니까요. 하여간 저는 분노했습니다. 그리고 기말고사 전에 제출하는 10페이지짜리 에쎄이(레포트)에다가 주제인 동북아시아 중세문학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한국과 일본의 중, 근세 역사와 이해] 라는 제 나름대로의 레포트를 제출했습니다. 남아있던 제 두뇌 속의 지식을 총 동원하여 객관적으로 기술했습니다.

한가지 희망은 그 백인교수가 마지막 남은 백인 특유의 합리성과 객관성으로 제 레포트를 평가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저는 C- 라는 학점을 받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학점에 대해 전혀 분노를 느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통쾌함을 맛보았습니다. C- 면 어떻습니까. 마지막 사명으로써 내 나라에 대한 조그마한 충성을 보였다고 생각했습니다. 비록 학점은 최하점을 받았지만 (C- 면 거의 최하점입니다. D 나 F 는 한 클라스에 한두 명 있을까 말까.) 할말을 했다고 생각하니 학기 내내 괴롭히던 억울함이 어느 정도 가셔지더군요.

게다가 또 하나 다른 통쾌함이 다가왔습니다. 마지막 기말고사 문제에 예기치 않게 저의 레포트에 실려있는 내용을 발췌해 만든 문제가 두 개 나와 있더군요. 과연 제가 제출한 레포트의 내용에 대해 다른 학생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 출제문제 형식을 벗어난 엑스트라의 두 문제. 그 백인 교수는 자신의 권위와 지식이 도전 받았다고 괘씸해 한 한편 과연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이 진실인지의 여부에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내 나라에 대한 저의 슬픔을 간략하게 정리할까 합니다.

첫째, 현 상황으로는 갑자기 고치기 힘든 문제입니다만, 한국 학생들의 수가 상대적으로 적고, 유학생들의 전공이 너무 치우쳐있다는 것입니다. 대부분 경영이나 경제, 아니면 컴퓨터, 엔지니어링, 치과에만 편중되어 있다보니 순수 학문계통엔 아예 전무한 상황입니다. 다른 나라 교수와 학생들이 대한민국을 자기네 맘대로 찢고 밟고 망가뜨려도 우린 모르고 있다는 겁니다.

유학생들의 전공이 심하게 편중되어 있는 상황은 그렇다 치고, 재미동포의 자녀들은 좀 다릅니다. 사실 그 수업엔 한국말을 거의 못하는 동포학생들이 한 2-3 명 있었습니다만, 그네들은 정말이지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는 거의 백인 학생들과 같은 수준이라 안타깝습니다. 정작 영어에 능통하여 백인 교수들과 언쟁을 펼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한국 동포학생들은 영어 능력에 비해 한국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이 전무한 상태니 어쩌겠습니까. 제일 슬픈 일은 그 동포 학생들은 백인 교수의 수업이 심히 편파적인지 아닌지 조차 모르고 그대로 학습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과연 그 동포학생들이 대한민국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까요? 더욱이 그런 종류의 수업들을 상당수 들어가는 와중에 말입니다. 가질 수 없습니다. 그 학생들은 조국이 한없이 약하고 비열하다고만 믿을 것입니다.

둘째, 한 학기가 더 지나고 어쩌다 그 편파적인 백인 교수와 복도에서 마주친 적이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저를 알아보더군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자신이 다음 학기에 대학원 과정인 아시아관계에 대한 리써치 쎄미나 수업을 하게 되었다면서 저에게 그 쎄미나 겸 수업에 참여를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유인즉슨, 자신을 비롯해 모든 교수들이 겪는 어려움이 무언고하니, 일본과 중국에 관한 자료는 영어로 번역되어 연구할 수 있게끔 방대한 데이터가 있지만 한국에 대한 자료는 거의 없어서 구하기가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얘기 역시 저로 하여금 수치심을 유발시키더군요. 하지만 이번만큼은 저도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게 현실이니까요. 도대체 한국에 있는 학자 분들은 무얼 하고 있는 겁니까. 제가 얼핏 들은 통계치에 의하면 일본 및 중국의 번역물은 홍수처럼 널려있는데 비해 한국의 번역물은 정말로 손으로 꼽을 정도라고 하는 그 수치스런 기사. 도대체 왜 이럽니까.

간단히 다시 말씀드립니다. 똑똑한 한국 학생들, 더욱더 많이 유학을 가야합니다. 유학생이 쓰는 비용이 막대하다고요? 구더기 무서워 장 담지 마라는 어리석은 말입니다. 어떤 작자가 그따위 말이나 지껄이고 있으면서 금뱃지 달고 있습니까? 우물안 개구리처럼 안 그래도 일본보다도 훨씬 적은 국토 반으로 나눠놓고 아웅다웅하면 안됩니다. 세계로 나와서 실정을 알아야 합니다. 국내에서 소리 질러 봐야 아무도 못 듣습니다.
그리고. 학자분들. 최소한의 자료만이라도 제발 영어로 번역 좀 하세요. 쓸데없는 짓거리들 그만 하시고, 제발 자료 좀 제공합시다. 외국 교수들이 공부를 하고 싶어도 읽을 책이 없다지 않습니까. 걔들보고 한국말 배우라고 하라고요? 동해의 명칭이 이젠 거의 완전히 Japan Sea로 바뀌었고 세계가 인정하지요? 이러다간 정말 독도도 뺏깁니다. 내 말이 장난인 거 같습니까? 저는 정말 슬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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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우연히 서울대 국사학과의 홈페이지에 갔다가 발견한 것이다. 또 재미있는 글이 없나 하고 게시판을 훑어 내려가니 똑같은 글이 5개도 넘게 있었다. 아마도 누군가 오래 전에 올린 글인 듯한데 호소력이 있었는지 여러 사람이 한두 달에 한번씩 계속해서 올려놓은 것 같았다. 이 글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는데, 본인도 말한 것처럼 이 유학생은 별로 특별한 것도 없는 전형적인 한국 유학생이며, 동아시아의 역사와 관련된 수업에서 전형적인 갈등과 수치를 느낀 사례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능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사태를 접한 뒤 애국심을 발휘해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대응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그는 나름대로 사태의 원인과 교수가 그러한 사고를 갖게 된 배경 등을 분석했다. 그리고 그의 분석과 대응방법도 현재 한국의 20대 젊은이들이 취할만한 보통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유학생의 경험은 오늘날 한국인들이 한번 심각하게 생각해보고 토론할만한 중요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먼저, 이 유학생이 내린 몇 가지 판단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그는 미국의 학자들이 한일 간의 역사를 잘못 알고 있으며 해외에서 우리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고 분개한다. 하지만 사실은 외국 학자들이, 혹은 일본의 학자들이 보고 있는 시각이 올바른 것이며 한국 정부와 학자들이 역사를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한국의 학생들은 어린 시절부터 수십 년 동안 진실과는 동떨어진 왜곡된 역사를 배우면서 터무니없는 자부심을 가지게 되고 일본에 대해 뒤틀어진 지식과 감정을 갖게 된다.

이 유학생의 경우, 한국이 2차대전의 피해국이라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지니고 있으며 또한 한국정부가 역사를 왜곡 과장한다는 교수의 말에 대해 그가 일본에서 공부했기 때문에 생겨난 잘못된 지식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게다가 조선과 일본이 과거에 동등하거나 최소한 비슷한 국력을 지닌 존재였다고 믿으면서, 조선의 왕이 일본의 황제에게 부탁했다는 말에 들어있는 상하관계를 억울하게 여기고 있다. 이 모든 오판은 그가 한국에서 받은 잘못된 역사교육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한국은 대동아전쟁에 일본과 함께, 아니 일본인으로 참전한 전범국이라면 맞는 말이지만 피해자라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우리 선조들은 대동아 전쟁에서 일본의 승리에 기뻐했으며 미국의 침략에 분개했다. 또한 많은 젊은이들이 애국심에 불타 자발적으로 일본군에 지원했던 것이다. 그리고 과거 일본은 조선에 비해 훨씬 강대국이었으며 중국과 맞먹거나 비교의 대상이 될 수는 있어도 조선과 비교할만한 나라는 아니었다.

따라서 조선의 왕과 일본의 황제라는 표현도 있는 그대로의 상하관계를 나타낸 것이니 한국인이 억울해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또한 그가 재팬 와나비라고 폄하한 교수도 동아시아를 연구하는 해외 학계의 일반적인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니, 한국인들만 스스로 억울하다고 생각할 뿐 세계의 모든 사람들은 그 교수처럼 생각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우리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사실은 외국인들이 그렇게 교육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유학생들이 해외에 나가 이렇게 비논리적인 억지주장을 펼치고 애국심에 불타 사태를 악화시키는 행동들을 취하게 만든 한국의 편협한 역사 교육 그 자체인 것이다. 다음에 소개할 글은 위에 인용한 글과 함께 묶여 있었던 것인데, 서로 관련이 없는 다른 유학생의 글이다. 미국의 역사교과서에 나타난 한국사를 인용 소개하고 있다.
미국인들은 우리 역사를 어떻게 배우며 이해하고 있을까. 여기 있는 한국사를 한 번 읽어보세요. 미국 교과서에서 그대로 옮겨온 글입니다.


The Kingdom of Korea
Korea is another East Asian with a distinctive and rich culture. For much of its long history, Korea has been dominated by stronger powers. Most often, China or Japan controlled Korean politically and influenced its culture. But the Koreans have managed to keep their own identity.
코리아 왕국
코리아는 독특하고 풍부한 문화를 가진 또 하나의 동아시아 국가이다. 긴 역사를 통해 대부분의 기간 동안 코리아는 주변 강대국의 지배를 받아왔다. 그 가운데서도 중국이나 일본이 가장 빈번하게 코리아를 정치적으로 통제했고 그 문화에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이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독자성을 지켜나갔다.

1. The Early Years. The first recorded effort at political organization in Korea was made in 194 B.C. A military leader named Wiman set up a tate that came to be known as Wiman Choson. Choson lasted for approximately 80 years, until armies from China destroyed it. The northern part of Korea then became part of the Chinese Empire. From about A.D.1 to 900, Korea was divided into three kingdoms. The Chinese culture strongly influenced the kingdom in the northern part of the country. Buddhism, Confucianism, and the Chinese written language were brought to Korea during this period. Japanese culture had a greater effect on the two kingdoms in the south, which were closer to Japan.

1. 고대. 한반도에서 가장 처음으로 기록된 국가는 기원전 194 년으로서, 위만이라는 장수가 위만 조선이라고 알려진 나라를 세웠다. 조선은 중국 군대의 공격을 받아 멸망할 때까지 대략 80여 년 간 존속되었다. 이후 한반도의 북쪽 지역은 중국 황제의 영토가 되었다. 대략 서기 1년에서 900년까지 한국은 세 개의 왕국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중국의 문화는 한반도의 북쪽에 있던 왕국에 강한 영향을 미쳤다. 불교, 유교, 그리고 중국 문자(한자)가 이 시기에 한반도로 들어왔다. 일본의 문화는 남쪽에 있던 두 왕국에 중국보다 더욱 더 강한 영향을 끼쳤다.

From the 10th through the 14th centuries, a dynasty of Buddhist rulers called the Koryo united all of Korea. (The name Korea comes from the word Koryo.) Although these kings ruled independently, they paid tribute to the Mongol Empire. During the Koryo period, in 1234, the Koreans invented movable metal type using Chinese symbols to print books. The Koryo period ended in A.D.1392. In that year, the Yi Dynasty established its rule over Korea. The Yi, who followed the teachings of Confucius, built their imperial capital at Seoul. This city served as the center of political rule for most of Korea´s history.

10세기부터 14세기까지, 고려라는 이름의 불교 왕조가 한반도 전체를 통일했다. (코리아라는 이름은 고려라는 단어에서 유래된 것이다.) 고려의 왕들은 자주적으로 통치했지만 몽골 제국에 조공을 바쳐야 했다. 고려 시대인 1234년에 한국인들은 한자로 책을 인쇄할 수 있는 금속활자를 발명했다. 고려 시대는 1392년에 끝났다. 그 해에 한반도에는 ‘이’ 왕조가 들어섰다. 공자의 가르침을 따랐던 ‘이’ 왕조는 서울에 제국의 수도를 건설했다. 이 도시는 한국 역사에서 대부분의 기간동안 정치의 중심지가 되었다.

A civil service examination system was used to select government officials from a group of scholars trained in Confucian teachings. In this and in other ways, the Koreans continued to draw heavily on Chinese culture. But they did create their own alphabet in the 1440´s. China also gave Korea military aid. With this help, Koreans resisted Japanese forces that invaded their country from 1592 to 1598. During the war, a Korean hero, Admiral Yi Sunshin, built the world´s first iron-sided ship. With it, he destroyed much of the Japanese fleet, which was made of wood.

이씨 왕조는 유교 사상을 공부한 학자들 가운데 정부관리를 선발하기 위해 과거시험 제도를 운용했다. 이 같은 방법(과거제도)과 다른 여러 가지 방식을 통해 코리언들은 계속해서 중국 문화에 깊이 젖어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1440년에 자신들만의 알파벳을 창조했다. 중국은 또한 코리아에 군사 원조를 했다. 이 도움에 힘입어 코리언들은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자신들의 나라를 침략한 일본인들에 저항했다. 이 전쟁에서 코리언의 영웅인 이순신 제독은 세계 최초의 철갑선을 제작했다. 이 배로 그는 나무로 만든 일본 함대의 대부분을 파괴했다.

Explain: Early Korean history was shaped by the Koryo and the Yi. 설명하시오: 고대 코리아의 역사는 고려와 이씨 왕조에 의해 성립되었다.

2. The Manchu Influence. The war with the Japanese exhausted the Koreans. As a result, new invaders from Manchuria easily conquered the whole country in the 1630´s. The Manchus then went on to seize control of China. In Korea, while the Yi rulers remained on the throne, they were subject to the Manchu government. Korea, following China´s lead, isolated itself from the rest of the world. European sailors who became shipwrecked in Korea were usually held prisoner. In 1669, eight sailors escaped from Seoul after 13 years of captivity. When one of the sailors, Hendrick Hamel, returned to Holland, he wrote a book about his experience. This book gave the Western world its first description of Korea.

2. 만주족의 영향. 코리언들은 일본과의 전쟁으로 지쳤다. 그 결과, 1630년대 만주에서 온 새로운 침략자들은 전 국토를 쉽게 정복했다. 그런
뒤 만주족은 계속해서 중국을 정복해나갔다. 코리아에서 ‘이’ 통치자들은 계속해서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만주족의 정부에 복속되었다. 코리아는 중국의 지도 아래 그 밖의 세계로부터 자신을 고립시켰다. 난파되어 코리아에 표류한 유럽 항해사들은 보통 감옥에 수감되었다. 1669년, 8명의 항해사들이 억류된 지 13년 만에 서울에서 탈출했다. 그 중의 한 명인 헨드릭 하멜은 네덜란드에 돌아가 그가 경험한 것들을 책으로 썼다. 이 책은 서양 세계에서는 처음으로 코리아에 대해 기술한 것이다.

After 1860, Western nations and Japan tried to force the Koreans to open their ports to trade. The Koreans resisted all such attempts. At the same time, the rivalry between China and Japan over Korea grew. Both wanted control of rich resources in Korea, such as minerals and timber. In 1876, the Korean government finally gave to Japanese pressure. A trade agreement was signed, opening up several Korean ports to trade. Soon, other nations, such as the United States, Great Britain, and Russia, signed treaties with Korea. Russia, a neighbor of Korea, was, like Japan, especially interested in Korea´s resources.

1860년 이후, 서양의 나라들과 일본은 코리언들에게 항구를 열고 무역을 하자고 압력을 가했다. 코리언들은 그러한 모든 시도에 저항했다. 같은 시기에 코리아를 대상으로 한 중국과 일본의 경쟁이 심해졌다. 두 나라는 광물이나 목재 같은 코리아의 풍부한 자원을 이용하고자 했다. 1876년, 코리아의 정부는 결국 일본의 압력에 무릎을 꿇었다. 무역협정이 맺어졌고 몇몇 항구가 무역을 위해 개방되었다. 곧이어 미국, 영국, 러시아와 같은 다른 나라들도 코리아와 조약을 맺었다. 일본처럼 한국의 이웃 나라였던 러시아는 특별히 한국의 자원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The Manchu government in China resented the growing Japanese influence in Korea. The Manchus attempted to take firmer control of Yi affairs. This conflict between China and Japan let to a brief war in 1894 in which the Chinese were defeated. At the end of the war in 1895, China recognized Korea´s independence. Japan had ended the Manchu influence in Korea.

중국의 만주족 정부는 코리아에 대한 일본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만주족은 이씨 조선에 대한 통제를 더욱 견고히 하고자 시도했다. 이러한 중국과 일본의 충돌로 인해 1894년 짧은 전쟁이 일어났고 중국은 패배했다. 전쟁이 끝난 뒤 1895년 말, 중국은 코리아의 독립을 인정하였다. 일본은 이렇게 코리아에 대한 만주족의 지배를 종식하였다.

Prove or Disprove: Korea was greatly influenced by competition between China and Japan. 입증 혹은 반증하시오: 한국은 중국과 일본의 경쟁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3. Japanese Rule. After the defeat of China, the Japanese began to force a number of reforms on the Yi government. The Russian began to aid the Koreans against the Japanese. Russia wanted control of Korea. Japan wanted Russia out of Korea. The two powers went to war in 1904. To everyone´s surprise, the japanese defeated the Russians on land and sea. In 1910, Japan annexed Korea and ended the Yi Dynasty. Korea became the largest possession in the Japanese Empire.

3. 일본의 통치. 중국을 물리친 뒤 일본은 이씨 정부를 개혁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이에 러시아는 일본에 반대하는 코리언들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러시아는 코리아를 자신들의 영향력 아래 두기를 원했으며 일본은 러시아를 코리아에서 몰아내고자 했다. 이 두 열강은 결국 1904년 전쟁으로 맞붙었다. 놀랍게도 일본은 육지와 바다에서 러시아를 격파했다. 1910년, 일본은 한국을 합병하고 이씨 왕조를 끝냈다. 코리아는 일본제국의 가장 큰 해외 영토가 되었다.

Japanese rule was harsh. A governor-general directly responsible to the Japanese emperor administered Korea. Freedom of speech and the press and other rights were denied to the Koreans. Schools had to teach the Japanese culture and language and ignore the heritage of Korea. The Japanese used their new colony as a place to raise rice to feed the people of Japan. Japanese business were encouraged, while Koreans were discouraged from engaging in such business. The Japanese also established military bases in Korea to aid further conquests in Asia.

일본의 통치는 가혹했다. 일본 황제의 대리인인 총독이 코리아를 통치하였다. 코리언들은 언론과 출판의 자유를 비롯한 다른 권리들을 가질 수 없었다. 학교에서는 일본의 문화와 언어를 가르쳐야 했고 코리아의 역사는 무시되었다. 일본인들은 그들의 새로운 식민지를 일본국민을 위한 쌀 생산지로 이용했다. 사업활동에서 일본인은 많은 혜택을 입었지만 코리언들은 그와 같은 사업활동에서 불이익을 당했다. 일본은 또한 아시아의 다른 지역을 정복하기 위해 코리아에 여러 군사기지를 만들었다.

In some ways, the Koreans benefited from Japanese rule. The communication and transportation systems were greatly improved. Modern business techniques used by the Japanese helped the economic development of Korea. The advanced educational system that the Japanese established trained many of Korea´s leaders. Korea did not become an independent nation again until 1945, after the defeat of the Japanese Empire in World War II. Even today, Korea continues to be influenced by stronger nations, especially China, Japan, and the United States.

몇몇 측면에서 일본의 통치는 코리언에게 혜택을 주었다. 통신과 운송 시스템에서 엄청난 발전이 있었다. 일본인에 의해 도입된 현대적인 산업 기술들은 코리아의 경제 성장에 도움을 주었다. 일본에 의해 도입된 고등 교육 시스템은 많은 코리아의 지도자를 배출해내었다. 코리아는 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 제국이 패한 1945년까지 독립국가가 되지 못했다. 오늘날에 와서도 코리아는 중국, 일본, 미국과 같은 강대국들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Give two examples of the harshness of Japanese rule. 일본 통치가 가혹했던 사례를 두 가지 쓰시오.
List two ways in which Japanese rule helped Korea. 일본 통치가 코리아를 도와준 두 가지 측면을 나열하시오.

후--------. 보셨나요. 저 지금 한숨 밖에 안나옵니다. 이러니 미국인들이 (다른 나라도 별반 다를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만...) 우리나라에 대해 호감을 가질까요? 동양의 대표적 문화라면 중국과 일본만이 나옵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교과서는 아예 한국 역사를 다루지 않습니다. 하긴, 이런 역사를 가르치는 것보다는 나을 수도 있지요. 저도 외국에서 가르치고 있는 한국 역사가 왜곡이 심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우리나라가 중국하고 일본의 똘마니였다니.

다행히 역사 선생님과 이야기가 잘 돼서 우리 class는 이 역사를 배우지 않기로 했습니다. 다른 부분(중국이나 일본)에도 많은 오류가 있었습니다. 만리장성이 지금의 평양 정도까지 그려져 있고, 우리나라가 청나라의 영토로 되어있는 등 이쪽 부분에도 많은 수정이 필요하더군요. 앞에서 보셨듯이 고대사 연구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여러분 분발합시다! 이 자료가 우리나라의 역사 회복에 조금이나마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미국 교과서에서 인용했다는 이 짧은 글은 한국의 역사를 실제보다 잘 평가해 준 것으로 생각된다. 조선시대의 과거제도와 한글창제, 이순신의 철갑선 등에 많은 부분을 할애해서 한국이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도 나름대로 찬란하고 독자적인 문화를 지켜왔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 유학생은 굉장한 불만을 가진 듯하며, 이런 역사를 가르치느니 차라리 한국사를 가르치지 않는 것이 낫다고까지 말한다. 게다가 역사 선생에게 압력을 가해서 자기 학급에서는 이 역사를 배우지 않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얼마나 거품을 물고 분개했으면 선생이 교과서 가르치는 것을 포기하는 사태까지 갔을까 싶다.

이 유학생은 위의 한국사에서 어느 부분이 불만인지를 조목조목 나열하지 않았지만, 짐작해보건대 그는 고조선의 역사를 80년이라고 한 부분과, 삼국에 대한 중국과 일본의 영향, 조선이 만주족의 속국이었다는 부분, 일본통치가 한국의 발전에 도움을 주었다는 표현 등에 분개한 것이 아닌가 싶다.

한반도에는 조선시대 이전에는 왕조라고 불릴만한 정치조직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외국에서는 위만조선과 삼국, 고려 등 여러 왕조가 있었다고 가르치고 있으니 이는 우리 입장에서 손해 볼 일이 아니다. 또한 조선이 명나라와 청나라의 속국이었던 것도 사실이니 한반도를 명, 청의 영토로 표기하는 것도 자연스런 일이다. 조선이 독립국이었던 것처럼 가르치는 한국의 교과서가 이상한 것인데, 이 점을 유학생들은 자주 착각하는 듯하다. 그는 우리가 일본의 도움으로 1897년에서야 처음으로 독립국이 되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다.

일제시대에 대해서도 위의 한국사는 일제통치의 부정적인 면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다. 조선 총독부가 언론과 출판의 자유를 탄압한 것은 초기 10년뿐이며 그 이후 조선에서는 일본의 헌법이 그대로 적용되었으며 당연히 일본과 똑같은 수준의 출판과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었다. 합병해서 한 나라가 되었으니 일본의 문화와 언어를 배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쌀도 국내 가격보다 높은 값으로 일본에 수출한 것이지 그냥 가져간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일본에 불리하게 기술된 교과서에 대해서도 한국의 젊은이들은 말도 안 된다는 식으로 분개하고 있으니 답답한 일이다. 한국에서 배운 것과는 딴판이니 당연한 반응이라 하겠다.

이상 두 유학생의 글을 살펴보았다. 우리는 여기에서 한국의 역사 교육이 얼마나 심각하게 진실을 왜곡하고 있으며 국제 수준과 동떨어져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잘못된 역사교육으로 인해 더 이상 우리의 젊은이들이 이 같은 고통과 수모를 당하지 않는 날이 하루빨리 올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애국심으로 불타 배운 대로 생각하고 실천하는 이 젊은이들에게 무슨 죄가 있다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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