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는 안 되는 일제시대의 진실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일제강점기의 실상

[4-2] 가즈오의 죽음 p395

난 토종한국인이다. 그렇지만 한국인이라는 게 너무 한심하게 생각되어 칵 죽어 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왜 일본의 만행은 파헤칠 줄 알면서 자신들의 더러운 이기심과 저열한 냄비 근성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 것인가? 일제시대 조선에 와서 살던 일본인들 중엔 분명 훌륭한 사람들도 많았다. 그런데 가즈오 일가족 살해사건처럼 한국인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일본이 그랬으니까 우리도 그랬다는 식으로 변명하며 사건을 축소 은폐시키려 하는데 애쓰고 있다. 이 분의 시신은 부산에 고이 이장되어 해마다 일본 사람들의 순례가 끊이질 않는다. 다음은 가즈오 부부가 죽던 날 그에게 평소 깊은 은혜를 받았던 김성수군이 보고들은 것을 기록한 증언이다. 그 사건 당시 김성수군도 가해자였으나 살인행위엔 동조하지 않았다고 한다.

가즈오씨는 일제시대에 흔히 볼 수 있었던 경상도 지역의 일본인 지주였다. 지주라고는 하지만, 가즈오 가족은 일본 정부의 조선 이주 정책에 따라 당초에는 별로 원하지 않았던 조선 생활을 시작하게 된 사람이다. 공무원이었던 가즈오는 정부의 명령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조선으로 부임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시절 일본은 일종의 군사독재 체제로서, 정부의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즉시 매국노로 몰리는 분위기 같은 것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조선에 있던 일본인 지주 가운데는 조선인 소작인들에게 법으로 규정된 것보다 많은 소작료를 거두는 못된 사람들도 있었지만, 평소 인정이 많았던 가즈오는 소작료를 전체 수확의 1/10만 받았고 그곳 마을 사람들과 한 가족처럼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이나 정을 함께 나누었다. 자신의 생활에 부족함이 없었기 때문에 총독부의 법령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받아야 하는 최소한의 소작료만 거둔 것이었다. 가난한 소작인이 식량이 없다고 하소연하면 기쁘게 먹을 것을 나눠주었고 마을에서 누가 상이라도 당하면 온 식구가 함께 달려가서 음식 장만은 물론 손수 통곡까지 하면서 슬픔을 같이 나누곤 했다. 이렇듯 가즈오는 인간에 대한 따뜻한 애정을 가진 참 인간이었다.

또한 가즈오는 주변에 갈 곳 없는 고아들이 생길 때마다 이들을 데려다 보살피곤 했는데, 한두 명씩 숫자가 늘어 1945년에는 어느덧 사설 고아원 수준으로 숫자가 많아지게 되었다. 하지만 가즈오 부부는 이 고아들을 가족처럼 사랑해주었고 스스로 그들의 아버지 어머니라고 불리는 것을 좋아했었다. 가즈오 가족은 평소 이처럼 조선인을 사랑했고 일본 군국주의의 침탈에 분개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일본 천황이 항복선언을 하던 1945년 8월 15일 자신들이 길러낸 조선인 고아들에 의해 처참하게 살해당했던 것이다.

그 날, 바야흐로 만세 소리와 함께 태극기가 물결처럼 바람에 휘날리며 조선인의 세상이 왔다. 신은 자신이 받아야 할 조선인의 사랑을 가로챘다고 가즈오 군을 질투했던 것일까? 그가 친자식처럼 길러 동경제국대학까지 유학시킨 A의 주도하에 그의 집에서 교육받고 자라난 장성한 청년들이 낫과 곡괭이, 삽을 들고 가즈오에게 몰려왔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김성수군은 그 때의 일을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가즈오: (부드러운 눈으로) 왜 그러냐 얘들아...
A: 쪽바리! 일본으로 꺼져라 꺼져버리란 말야.
가즈오: (짐짓 화난 목소리로)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잘못했단 말이냐? 너희 모두가 내 자식이요, 나는 이 집의 가장이며 너희들의 부모다. 너희 조국이 광복한 것은 나도 평소 애타게 바라온 일이다. 춤이라도 추어야 할 이 기쁜 날에 왜 패륜아 마냥 흉기를 들고 나에게 몰려온 것이냐? 나는 분명 너희들을 그렇게 교육시키지 않았다. (눈물을 흘리며) 정말 슬프구나 조선의 자식들아. 내가 사랑을 기울여 키워왔건만 결국 일본인과 조선인은 융화될 수 없단 말인가? 너희들이 원한다면 돌아가 주마.

A: 의미심장한 눈짓을 B에게 보낸다. (재산 다 처분해 돌아가면 우린 모 먹고 살라고? -_-)
B: 죽어 쪽바리 씨발 놈아.

뒤이어 곡괭이가 가즈오의 뒤통수를 내리침과 동시에 수많은 삽과 낫이 그의 몸을 갈가리 찢어 놓기 시작했다. 이 때 가즈오의 아내가 참지 못하고 뛰쳐나왔다. 그때까지 가만히 있었던 C는 가즈오의 아내를 보더니 그녀의 머리채를 잡고 정원 으슥한 곳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 무려 13명이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어머니라고 깍듯이 모셨던 그녀를 강간하기 시작하였다. (김성수 군은 이 대목에서 자신이 말렸다면 자기도 살해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간을 못 견딘 그녀는 행위 도중 사망했고, D는 평소 어머니라고 부르던 그녀의 온 몸을 난자질하고 것도 모자라 내장을 끄집어내 흩뿌렸다.

가즈오에게는 어린 딸이 하나 있었다. 평소 모범적이고 착했던 히미코 상은 방과 후 집에 돌아와 부모에게 일어난 참상을 보고 넋이 나가 버렸다. 히미코가 며칠을 통곡하는 소리에 인근 주민들은 잠을 못 이뤘다고 한다. 그 후 고아가 된 히미코는 밥을 구걸하러 마을 주변을 돌았지만 어느 조선인 하나 눈길 한번 안 주며 모른 척 했다. 결국 그녀는 9일 후 마을 다리 밑에서 앙상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당시 히미코는 초등학교 6학년에 다니던 어린 아이였다. 가즈오의 재산은 용맹하고 애국심에 불타오르는 조선 청년들의 손에 송두리째 넘어갔고, 이 사건은 마을 사람들의 침묵 속에 서서히 잊혀져 갔다.

이 글은 나에게 어느 독자가 보내준 편지에 적혀있던 사례인데, 글의 서두에는 한국 사람이 반성하며 작성했다고 되어 있긴 하지만 가즈오군, 가즈오상 등 일본식 호칭들이 섞여 있고 마지막 부분 조선인에 대한 경멸에 찬 문장들(삭제함)이 포함된 것 등을 감안하면 한국어를 구사할 줄 아는 일본인이 쓴 것이 아닌가 싶다. 어쨌든 이 사건에 대해서는 들어봤다는 한국인들도 많은 것을 보면 실제로 부산 지역에서 발생한 사건인 듯하고, 또한 한국의 식민지 피해주장에 대한 일본인의 대항논리를 엿볼 수 있는 드문 사례이기 때문에 결코 그 무게가 가벼울 수 없는 글이라 하겠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일본의 패전 후 조선반도에서는 이 같은 살해극이 많이 발생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일본의 무조건 항복선언 이후 북한 지역에는 소련군이 신속하게 진주해 군정을 시작했지만 남한에 미군이 상륙한 것은 9월 중순이었다. 따라서 약 1개월 정도 남한 지역에는 무정부상태가 지속된 기간이 있었다. 한반도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일본인과 그 부역자들에게 원한을 지닌 조선인들이 많았을 것이고, 이들은 일본인들을 죽이고 그들의 재산을 강탈하거나 일본 여자들을 강간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조선인들이 8월 15일날 일본의 항복을 기뻐했던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일본의 일부로서 패전국의 암담한 미래를 함께 하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일본 통치 기간 중 마지막 기간, 특히 대동아 전쟁이 시작된 마지막 4년은 일본인은 물론 일본의 통치를 받는 지역의 주민들에게도 큰 고통이 안겨진 시기였다. 그러므로 조선인들에게 8월 15일은 지긋지긋한 전쟁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또한 일본인들을 살해하고 그들의 재산을 빼앗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점에서 매우 기쁜 일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한국 사회에서 조선인에 의한 자행된 이 같은 학살과 잔혹 행위들은 전혀 알려지거나 조사된 적이 없고 우리가 받은 피해만 거듭거듭 강조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일제통치 기간동안 받았다는 그 피해라는 것도 사실보다 훨씬 더 부풀려져 있을 것임은 쉽게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조선은 일본의 통치를 받아 미개한 농업사회에서 단시일 내에 자본주의 공업국으로 발전해 높은 생활수준을 누려왔다. 그러나 일본이 전쟁에 패하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마치 자신들이 전승국이라도 된 양 일본을 저주하며 그들의 재산을 빼앗고 학살한 행위는 분명 인륜에 반하는 범죄행위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해서 일본인들을 모두 추방한 뒤 남한과 북한의 정부는 강탈한 일본인의 땅과 공장들을 '적산'(敵産',적의재산)이라고 부르며 당당히 나눠가졌다.

만약 일본이 전쟁에서 승리했거나 최소한 영토를 보전하면서 휴전이라도 할 수 있었다면 과연 조선인들이 이렇게 나올 수 있었을까? 아마도 예전보다 더욱 자발적으로 일본인임을 주장하면서 충성을 다했을 것이다. 그런데 전쟁에 패하고 붙어 있어봤자 별 볼일 없다고 판단되는 순간, 그들은 갑자기 돌변해서 일본을 원수로 대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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