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는 안 되는 일제시대의 진실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일제강점기의 실상

[2-10] 대동아 공영권의 꿈 p267

일본은 1910년 조선을 평화적으로 흡수 합병함으로써 오랜 역사를 통해 시도해오던 대륙진출의 꿈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이와 거의 동시에 대륙에서는 1911년 신해혁명으로 청나라가 멸망했고 러시아제국은 1917년 소비에트 혁명에 의해 무너지고 말았다. 이로 인해 동아시아에 존재하던 힘의 균형은 무너지고 일본의 진출에 유리한 여건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그 무렵 1914년 유럽에서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은 일본에게 좋은 기회가 되었는데, 일본은 영국이 아시아 지역에서 독일군을 공격해달라고 요청하자 재빨리 독일에 선전포고를 한 다음 동아시아와 태평양 지역에 있던 독일의 영토와 재산을 모두 압수하고 많은 이권을 차지할 수 있었다. 이 때 일본은 적도 이북에 있는 독일령 북양군도를 점령, 일본제국의 영토로 편입시킬 수 있었다. 이 기간동안 일본의 경제도 대호황을 구가하며 급성장했다.

즉 1910년대 일본제국은 급변하는 세계정치의 조류 속에서 직접 전쟁을 겪지 않으면서도 전쟁 물자를 판매해 경제 성장을 도모하고 각종 영토와 이권을 차지해 국력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로 이용했다. 특히 제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유럽과 미국은 막대한 자원 소모와 산업시설 파괴, 인명피해를 감수한 데 반해 일본은 배후에서 정치 경제적인 이득을 취함으로써 열강 사이의 기존 세력관계에는 중대한 변화가 발생하게 되었다.

다른 제국주의 열강들이 그러했듯이, 이 시대 일본도 점차 경제력과 군사력이 성장함에 따라 전쟁이나 동맹을 통해 점차 영토를 확장해 나갔다. 일본은 1895년 청나라와 전쟁을 통해 대만을, 1905년에는 러시아와의 전쟁을 통해 조선반도와 요동반도, 사할린, 쿠릴 열도 등을 영토에 편입할 수 있었다. 일본 제국주의의 팽창정책이 극에 달했던 1942년에 이르게 되면 일본은 동서로 인도에서 하와이까지, 남북으로는 적도에서 몽골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영향권에 둘 수 있었다.

1930년대는 전 세계를 휩쓴 대공황으로 인해 세계 자본주의의 미래가 암담하던 시절이었다. 그 결과 자본주의 제국, 특히 스페인과 독일, 이탈리아 같은 후발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파시즘이 대두하면서 민주주의와 사회주의가 강한 탄압을 받았는데, 이런 조류에서 일본도 예외가 아니었다. 일본은 1930년대 치안유지법이라는 강력한 공안법안을 만들어 좌익과 자유주의자들을 탄압하였다. 하지만 일본의 파시즘은 이탈리아나 독일과는 다른 양상으로 나타났다. 히틀러나 무솔리니처럼 카리스마를 지닌 파시스트가 등장하여 지도자로 부상하는 대신 일본에서는 점차 내각에 군인들이 많이 참여하면서 군국주의의 색채를 띠게 된 것이다.

이 시대 일본의 군국주의는 살아있는 신인 천황을 중심으로 일본이 단결하여 아시아를 유럽인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는 강한 사명감을 가지고 활발하게 군사행동의 범위를 넓혀 가는 형태로 나타났다. 일본 국내에서는 조선, 대만을 막론하고 반체제 운동과 공산주의 운동에는 강력한 탄압이 가해졌다. 1930년대 중반이 되자 일본 내각은 군부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하고 군부에 의해 휘둘리는 신세로 전락했다. 예컨대 1931년의 만주사변이나 1937년 마르코폴로다리 (노구교) 사건 등은 본국으로부터 아무런 훈령이나 지시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관동군의 지도부가 독자적으로 군사행동을 시작하고, 이를 일본 내각에서 사후 추인하는 식으로 전개되었다.

아시아 대륙을 향해 진출하면서 일본은 황인종의 단합과 공동번영을 정치 슬로건으로 제시하기 시작하였다. 일본은 만주를 점령하기 직전인 1931년 5족 화합의 슬로건을 내걸었는데, 이는 일본 조선 만주 중국 몽골의 다섯 민족이 서로 화합해야 한다는 뜻으로서 지금으로 보면 북방계 몽골로이드의 단일블록을 제창한 것이다. 이 주장은 1933년 일만지 블록이라는 슬로건으로 발전하였으며, 이는 일본과 만주, 지나(중국)가 하나의 국가로 통합되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일본의 황인종 단합이론은 이 같은 발전과정을 거쳐 드디어 1940년 8월 1일 마쓰오카 일본 외상의 담화를 통해 역사적인 '대동아 공영권'에 이르게 된다.

대동아 공영권의 요지는 아시아 민족이 서양 세력의 식민지배로부터 해방되려면 일본과 각 지역의 독립운동 세력이 연합하여 서양 세력을 몰아내야 한다는 것이며, 그 범위로는 일본(조선과 대만 포함), 중국, 만주를 중축으로 하여 동남아시아 지역과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인도 등을 언급하고 있다. 1940년 8월은 일본의 군부가 내부적으로 영국과 미국을 상대로 한 전면전을 결심하고 있던 시기로서, 대동아공영권은 사실상 일본이 향후 전쟁을 통해 점령하고자 하는 모든 영토의 목록을 제시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후 일본은 실제로 중국의 대부분 지역과 동남아시아 지역을 유럽인들로부터 해방했지만, 인도와 호주 뉴질랜드에 대한 공격은 실패하고 만다. 사실 중국과 동남아, 인도까지는 몰라도 예나 지금이나 세계에서 가장 높은 생활수준을 누리며 행복하게 살고 있는 호주와 뉴질랜드까지 일본군에 의해서 해방될 이유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대동아 공영권이라는 슬로건은 내용 자체로는 모든 아시아인에게 고무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지만, 아쉽게도 일본 제국주의의 광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에 침략전쟁의 수단으로 이용된 탓에 이후 오랜 세월동안 그 누구도 입에 담으려 하지 않는 용어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동아일보라는 신문이 아직까지 한국의 대표적인 언론매체로 살아남아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동아일보는 1920년에 창간되었으므로 이것이 1930년대 말에야 출현한 대동아공영권의 사상을 반영한 이름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동아시아 공동체의 개념은 일찍이 이토 히로부미가 활동하던 1890년대부터 사용되었던 것이므로 전혀 관련이 없다고 보기도 힘들다. 어찌 되었거나 '동아시아 지역'이라는 국제적인 개념을 신문의 이름으로 설정했다는 것은 시대를 앞서본 혜안이 아닐 수 없다. 얼핏 대동아공영권의 개념을 떠오르게 하는 이러한 이름을 가진 신문이 주요 언론사로 활동한다는 것은 역사에 관한한 자기비하에 빠져 자학사관을 강요당하고 있는 일본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지금은 이 대동아 공영권의 슬로건을 다시 무덤에서 끄집어내 재활용 가능성을 타진해볼 때가 되었다. 최근 세계 정세의 변화가 아시아인에게 새로운 선택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반세기 동안 존속하던 냉전체제가 무너진 이후 세계는 유엔과 세계무역기구 체제 아래 블럭화와 세계화라는 상반된 조류가 동시에 진행되는 일대 재편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러는 가운데 유럽공동체와 북미자유무역지대가 결성됨으로 인해 전후 세계 경제의 3대 축이었던 서유럽과 북미, 동아시아 가운데 유일하게 동아시아만이 블록화의 조류에서 뒤쳐진 상황이 된 것이다. 지난 세기말 말레이시아를 중심으로 동아시아경제권을 형성해야 한다는 여론이 제기되었지만 미국의 집요한 방해공작과 역내 회원국들의 내부사정으로 인해 한 발짝도 진척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동아시아 경제권이 결성되는 것은 자유무역의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며, 그 대신 미국과 캐나다를 포함하는 환태평양경제권을 구성하자고 주장하면서 일본과 한국에게 동아시아 경제 블럭에 참여하지 말도록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군사적으로는 한국과 일본, 대만 등 자신의 영향력 아래 있는 위성국가들을 이용해 중국을 포위함으로써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봉쇄하고자 하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

일찍이 유럽이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단일국가를 이루고자 하는 유럽공동체의 실험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자잘하게 분산된 국가 체계로는 미국의 연방체제에서 비롯되는 강력한 경쟁력을 감당할 수 없다는 통찰에서 비롯된 것이다. 실제로 20세기 들어 미국이 정치 경제 군사 과학 등의 분야에서 성취한 놀라운 성과들은 광대한 지역을 포괄하는 연방체제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미국의 연방은 1700년대 말 동부 13개 식민지의 소규모 연방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1800년대 남북전쟁으로 기나긴 갈등을 겪으면서 무력으로 남부를 연방에 복속하고 서부에서는 인디언과 멕시코, 캐나다 등과 전쟁을 벌여 연방을 태평양 연안까지 확장한 결과 오늘날의 미국이 만들어진 것이다. 만일 남북전쟁에서 남부 동맹이 승리했거나 휴전으로 전쟁이 마무리되었다면, 오늘날 북미지역은 유럽이나 중남미처럼 크고 작은 여러 개의 국가가 난립하는 모습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단 대서양에서 태평양에 이르는 광대한 대륙이 하나의 정부 아래 통일되고 연방체계가 안정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자 미국의 영토는 알래스카와 하와이, 태평양 등으로 급속하게 확대되었고 그 결과 오늘날 자연스럽게 세계의 주인행세를 하는 초강대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1980년대 초에 시작된 유럽공동체 운동도 성공을 거두어 이제 하나하나 눈에 띄는 성과들을 획득하고 있다. 1980년대 말 역내 국가들 사이에 자유무역지대가 형성되어 관세가 철폐되었고 1993년에는 국경선이 사라졌으며, 2002년부터는 유럽연합에 참여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단일화폐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유럽의회와 유럽중앙은행의 권한도 날로 확대되는 추세이며, 정부 기구인 유럽위원회가 위치한 브뤼셀은 점차 유럽의 수도로 부상하고 있다. 이 정도면 정치 경제 문화적인 활동에서 사실상 유럽은 세계무대에 단일국가로 존재하게 된 것이다.

머지않아 유럽 대통령이 선출되고 유럽 육군, 유럽 공군이 창설되는 등 정치 군사적인 통합이 이루어지는 것도 시간문제로 보인다. 결국 20년 정도의 세월이 흐르면 유럽공동체는 러시아까지 포함하는 광대한 유럽연방으로 발전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캐나다, 미국, 멕시코 등 북미 블럭을 구성하고 있는 3개국도 결국은 캐나다와 멕시코가 북미국가연합(USA)에 가입해 단일 연방을 이루는 미래를 꿈꾸며 날로 통합의 강도를 높여나가고 있는 추세다.

이처럼 유럽과 북미대륙은 점차 영토를 넓혀가면서 단일 연방체를 구성하고 있는데 동아시아의 미래는 아직도 안개 속에 잠겨 있는 것처럼 불투명하기만 하다. 중국은 1980년대부터 한국과 대만의 성공을 흉내 내 수출드라이브에 의한 개방과 성장 정책을 추진하면서 경제개발에 성공을 거두고는 있지만, 정치적으로는 강압적인 일당독재 체제를 유지하고 있어 장래가 불투명한 상태이다. 중국의 권력자들은 앞으로 100년 간 일당독재체제를 유지할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지만, 그들의 경제성장이 계속되는 한 지금의 체제로는 안정된 사회를 유지하기 힘들어질 것이다.

동남아시아는 날로 성장하는 중국의 군사력에 위협을 느껴 12개국이 참여한 아세안을 결성해 대항하고 있는데, 전형적인 후진국 블록이라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블록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역내에 기술력과 자본, 자원과 인구 등이 적절히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 법이다. 유럽공동체의 앞날이 밝은 것은 역내에 6억의 인구와 광대한 영토, 무한한 자원이 있고 무엇보다 서유럽의 선진공업국들이 참여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아세안의 경우 선진국이래야 겨우 300만 남짓한 인구를 가진 도시국가 싱가폴 하나뿐인 상황에서 독자적인 경제권 구성은 기대하기 힘든 상태이다.

따라서, 일본과 남북한, 중국, 아세안, 호주와 뉴질랜드를 포함한 광대역 경제블럭을 구성하고 장기적으로 이를 북미와 유럽형태의 연방체제로 발전시키는 것만이 동아시아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미래의 대안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바로 60년 전 대일본제국이 꿈꾸었던 대동아 공영권의 모습이다. 만약 일본이 대동아 전쟁에서 패하지 않고 휴전 등을 통해 1940년대의 영토를 유지하면서 대동아 공영권을 구성하는 데 성공했다면 오늘날 아시아는 미국이나 유럽을 능가하는 초강대국, 대동아연방으로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혹은 약간 더 현실적인 시나리오로서 일본이 1941년 미국과 진행하고 있던 평화협상에서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중국과 동남아 지역에서 군대를 철수함으로써 만주와 중국북부, 대만과 조선, 태평양 지역 등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다면 아시아를 위해 좋은 일이었을 것이다. 위의 지역만 해도 인구가 3억이 넘는 데다 영토 면에서도 미국만은 못하지만 미국의 1/3은 되는 크기인 것이다. 게다가 나중에 중국본토가 공산화되었을 때 몽골 정도는 자동으로 대동아공영권에 흡수할 수 있었을 것이니 그렇게 되었더라면 대동아연방에 소속된 3억 인민의 삶은 지금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풍요로웠을 것이다. 이 같은 시나리오에서 볼 때 일본의 패전은 아시아인의 행복을 위해 실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일본제국이 패망함으로 인해 아시아는 그 뒤 어떤 운명을 걸었던가. 일본은 원자폭탄을 포함 미군에 의한 각종 무차별 폭격으로 잿더미가 되었고 경제공황과 인플레이션으로 한순간에 거지가 되어 오랜 기간동안 비참한 생활을 영위해야만 했다. 중국은 부패한 국민당과 이에 맞선 공산당의 내전으로 무수한 사람들이 죽고 부상당했으며, 공산당에 의한 통일 이후에도 잔혹한 일당독재에 신음하면서 길고 긴 가난과 고통의 세월을 견뎌야만 했다. 동남아 역시 월남전과 크메르루즈의 발호, 군사독재 등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죽고 아직까지 가난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당시 아시아 각국에서 일본의 항복과 패망을 환영했던 사람들은 이처럼 일본의 패망이 곧 아시아의 불행을 의미한다는 점을 알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오늘날 세계는 많은 사람들이 다른 나라를 여행하고 이민 유학 등으로 인종간의 교류가 활발해져 지구촌이라는 용어가 무색하지 않을 정도가 되었지만, 인종의 벽이란 예상외로 넘기 힘든 것이다. 특히 그것이 개인간의 문제가 아니라 특정 인종으로 구성된 국가 대 국가의 관계가 되었을 때 인종의 벽은 더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1997년 동아시아에 경제위기가 닥쳐 신흥개발국들이 경제공황에 빠지게 되었을 때, 이미 4년 전 이를 예견한 미국의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일약 스타가 되었고 아시아 각국은 백인들의 경제기구인 IMF에 모든 경제주권을 내준 채 미국식으로 경제시스템을 뜯어고쳐야만 했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해보면, 당시 노벨상 후보 1순위로 꼽히면서 이미 미국의 경제정책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던 폴 크루그먼이 동아시아는 더 이상 발전할 수 없으며 곧 망할 것이라는 악담을 퍼부어 대고, 곧이어 조지 소로스 펀드를 비롯한 국제 투기자본들의 농간에 의해 동아시아 국가들이 줄줄이 참담한 공황상태로 쓰러지게 된 것이 과연 우연의 일치였는가하는 것이다.

몇 푼의 돈을 빌려주겠다는 조건으로 한국의 경제주권을 장악한 IMF가 한국 정부에 요구한 첫 번째 조치는 초고금리 긴축정책이었다. 당시 IMF는 저금리 상황에서도 운영자금을 조달하지 못해 기업들이 줄줄이 쓰러지던 상황에서 연 30%가 넘는 초고금리를 강요, 5대재벌을 포함한 사실상 한국의 모든 기업을 기술적인 부도 상태로 몰아갔다. 과연 이것이 IMF의 무지로 인해 우연히 발생한 실수였는지 의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당시 IMF가 강요했던 정책으로 인해 엄청난 고금리고 회사채를 발행할 수밖에 없었던 대우와 현대그룹은 곧 부도가 나 쓰러졌는데, 사실상 이로 인해 한국경제는 회생불능 상태로 빠져들 가능성이 많았다. 그것을 견뎌낸 과정엔 우리가 알 수 없는 비화가 많았을 것이지만 전체적으로 기적이라고 밖엔 말할 수 없는 결과였다. 이 같은 사태는 전체적으로 미국의 시나리오에 따라 전개된 것으로 보이며, 미국은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경제발전에 위협을 느끼고 호랑이가 더 크기 전에 아예 싹을 잘라버리려고 시도했던 것이다.

최근 미국과 유럽은 구 유고연방에서 발생한 인종 및 종교분쟁에 적극적으로 간여해 사태를 해결하고 주동자인 밀로셰비치를 전범재판소에 회부하는 등 절친한 우정을 과시했다. 이 같은 선진국의 개입으로 인해 구 유고연방은 정치적으로 안정을 되찾았으며 소수인종에 대한 테러가 종식되고 민주적인 질서가 들어서게 되었다.

그러나 서구 선진국들이 이라크에 대해서는 어떻게 했는가. 아랍 역내에 분쟁이 발생하고 선진국이 무력개입을 한 것까지는 똑같지만 미국은 후세인을 추방하지도 않았고 이라크에 민주적인 정치시스템을 이식하지도 않았다. 그 결과 이라크 국민들은 여전히 후세인 독재체제 아래 굶주려 죽어가고 있으며, 이라크를 제외한 나머지 중동 국가들도 미개한 전제정치와 독재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실로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백인들은 다른 인종들의 국가가 발전하는 것을 '진심으로' 원치 않는 것이다.

이는 과거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도 미국이 군사독재 정권을 열심히 지원함으로써 이들 국가의 발전을 가로막은 행태와 기본적으로 같은 것이다. 따라서 동아시아의 황인종들은 미국의 방해공작과 분열책동으로부터 벗어나 장기적으로 역내 단합과 황인종의 공동번영을 추구해야 한다. 이를 위해 다시 대동아 공영권의 이상이 부활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동아시아 역내에는 고도의 산업구조를 가진 선진국들이 있는 반면, 대부분의 지역은 아직 개발도상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동아시아의 통합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 후진 개발도상국의 주민들은 임금이 높은 공업국가로 이주함으로써 순식간에 생활수준을 높이려는 시도를 하게 되는 반면, 무제한 이민을 받아들일 수 없는 선진국들은 이민을 억제하려는 태도를 취하게 된다. 이 같은 상태에서는 단기간의 통합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유럽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선진국들이 먼저 경제통합체를 이룩한 다음 시간을 두고 일정 수준의 발전 단계에 도달한 역내 국가들을 차례로 흡수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며, 또 실현 가능한 유일한 방식이 된다.

일단 동아시아 역내에는 일본과 한국, 대만, 싱가폴, 호주와 뉴질랜드 등 몇몇 선진국들이 있다. 이 가운데 아세안 블록에 가입해 있는 싱가폴을 제외하면 일본과 한국, 대만, 호주와 뉴질랜드 등 5개국이 동아시아 공동체의 첫 번째 회원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첨단 산업위주의 수출지향적인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는 한국, 일본, 대만과 자원부국인 호주 뉴질랜드는 상호 보완하는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어 일단 시작하기만 하면 빠른 시일 내에 유럽공동체와 같은 단일 블록을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호주와 뉴질랜드는 영연방 국가로서, 영국계 백인들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북미와 중남미를 침략한 백인들과 달리 원주민들과도 잘 화합하여 평화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들이다. 이들은 과거 영국과의 무역에 경제의 상당부분을 의존하고 있었는데 1980년대 중반 영국이 유럽 공동체에 가입한 뒤부터는 무역액이 줄어들어 오랜 기간동안 불황을 겪어야만 했다. 이후 호주는 전통적인 백호주의를 포기하고 아시아국가임을 선언, 동아시아 블록에 편입되기를 희망해왔다. 유럽과 북미가 블록을 구성한 지금 상황에서 호주와 뉴질랜드는 장기적으로 아시아 블록에 편입되는 것만이 유일한 생존의 길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일본은 1960년대에 시작된 고도성장이 1990년대 초반 마무리되면서 거품경제의 후유증으로 10년이 넘는 조정기를 보내고 있다. 사실 10년이라고는 하지만 앞으로 일본경제의 장기불황이 언제 마무리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일본은 전반적으로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는 듯하다. 일본은 1990년대 시작된 인터넷과 정보통신 혁명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됨으로써 첨단 기술 분야와 서비스 산업 분야의 경쟁력도 하락했기 때문에 미래의 전망이 불투명한 상태이다. 따라서 일본의 입장에서는 활력 있는 경제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한국, 대만 등과 경제통합을 이룬다면 다시 성장의 동력을 회복하고 유럽, 미국 등과 대등한 경제규모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므로 반대할 이유가 없다. 일본은 이러한 점을 인식, 몇 년 전부터 한일 자유무역지대 창설을 제의하고 있으나 한국의 소극적인 태도로 인해 지지부진한 상태이다.

한두 개의 대륙과 수억 명의 인구를 포괄하는 지역 블록이 성립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유럽의 경우에도 1950년대 철강공동체의 창립에서부터 40년이 넘는 시간동안 꾸준히 노력한 결과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동아시아 5개국이 참여하는 연방건설에도 많은 시일이 소요될 것이다. 먼저 자유무역지대를 창설한 다음 일정 시일이 경과한 뒤 국경개방 등을 통해 자본과 인력의 이동을 자유화하고 공동의회와 중앙은행을 창립하는 등 가능한 부분부터 정치 경제적인 통합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한국과 일본은 연방제의 정치체제를 구축할 수도 있다. 한국은 중부와 서부, 동부의 3개국으로 분할하고 일본은 혼슈의 5개 지역과 홋카이도, 큐슈, 시코쿠 등 8개의 국가로 분할해 연방을 형성한 뒤 일정 기간이 지난 뒤 대동아 연방에 각자 가입하는 형태가 바람직할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대만, 뉴질랜드, 호주의 5개 주, 한국의 3개 주, 일본의 8개 주 등 18개 주로 구성된 인구 2억의 광대한 대동아연방이 형성될 수 있다. 이후 일정 기간을 두고 북한과 중국, 아세안 12개국 가운데 조건이 충족된 국가들을 차례로 흡수하면서 대륙으로 뻗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대동아연방의 구성은 군사 안보 면에서 중국의 패권주의로 인해 미국의 군사력에 의존하고 있는 이 지역 국가들의 안보불안을 해결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며, 경제 문화적으로도 상호보완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는 유력한 방안이다. 이 같은 동아시아의 미래 청사진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한국이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역내 선진국과 후진국의 중간 입장에 있으며, 무역의존도가 높고 자원을 많이 수입하는 입장이므로 통합으로 인해 가장 큰 이득을 얻는 국가이다. 또한 한국이 역내 통합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일본을 경계하는 다른 나라들의 의구심을 해소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대만은 중국에 의해 국제사회에서 거의 외교권을 박탈당한 상태이므로 중심역할을 하고 나서기 힘든 입장이다.

이처럼 중요한 시기에 한국 정부는 편협한 역사 인식에 근거해 일본에 대해 교과서의 수정을 요구하고 총리의 신사참배를 문제 삼는 등 반일책동을 계속하면서 양국의 문화교류를 방해하고 있다. 또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부로부터 천문학적인 자금을 거의 공짜로 삼켜온 농민들은 정부가 자유무역 협정을 시도할 때마다 대규모 시위를 벌이면서 협상을 방해하고 있다. 정부는 한줌도 안 되는 농민들의 집단이기주의에 휘둘려 국가의 백년대계를 망쳐놓는 어리석인 짓을 언제까지 계속하고 있을 것인가.

한국 정부는 왜 반일감정을 진정한 애국심인양 호도하면서 스스로 일본과의 정치 문화 경제 교류를 가로막는 역할을 자임하고 나서는 것인가. 일본인들은 이 같은 김대중 정부의 책동을 국민들의 반일감정을 이용해 지지율을 높여 대통령선거에서 유리한 지위를 점하려는 의도로 해석하고 있다. 실로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은 하루빨리 올바른 정부와 지도자를 선택해 일본과 우호관계를 회복하고 동아시아의 미래를 선도해나가는 중심 국가로 발전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최근 소신 있고 현명한 지도자를 가지게 된 일본이 새삼 부러워지는 마음을 감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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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로 보는 일제시대 옛날사진 모음 친일파를 위한 변명 [목차](전문 게재) 대한민국 이야기 [목차](전문 게재) 동아일보 한국어로 번역된 일본 중학교 역사교과서 대한제국의 황실재정 독도 바로 알기 화해를 위해서_박유하(일부발췌) 근대사 연표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