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는 안 되는 일제시대의 진실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일제강점기의 실상

[1-9] 한국과 중국은 일본을 비난할 자격이 있는가 p123

일본의 과거사 문제를 들먹일 때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인용하는 것이 바로 정신대, 종군위안부 문제다. 그 외에 대동아 전쟁 당시 많은 조선인들이 징용으로 강제 노역을 하거나 죽었다는 것, 독립운동을 하다가 고초를 겪거나 죽어간 사람들이 많다는 것 등을 얘기하곤 한다. 이것은 조선과 직접 관련된 사안들이고, 그 외에 일본의 전쟁범죄에 관해 논의할 때에는 남경사건과 만주에 있었던 731부대의 마루타 실험 같은 것도 단골 메뉴라 할 수 있겠다.

이런 행위들이 칭찬 받을 만한 대상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잘못된 일이고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제네바 협정으로 상징되는 현대 교전규칙에는 전쟁 중 적대국 병사에 대한 살인은 정당하다고 인정하고 있으나 강간이나 양민학살, 생체실험과 같은 비인간적인 행위는 범죄행위로 보고 시효 없이 처벌하고 있다.

그러나 2차 대전 이후의 몇몇 전쟁을 생각해보면 '비인도적'이라는 구분 자체가 현실성이 없는 경우가 많다. 전후방이 없는 현대전에서 사람을 죽이면 모두 살인인 것이지 그게 군인이든 민간인이든 무슨 차이가 있다는 것이며, 특히 베트남전쟁이나 한국전쟁과 같은 이데올로기 전쟁에서는 누가 병사이고 누가 민간인인지 구분하는 일조차 힘들어지게 된다. 현대전에서 민간인은 누구나 잠재적인 병사이고 또 병사들은 언제든 민간인으로 돌아가거나 민간인 행세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예컨대 북한과 같이 전시에 전 국민이 군대조직으로 편입되어 최후까지 항전하도록 세뇌되어 있는 국가의 경우, 전쟁이 일어난다면 수백만의 민간인을 살상하지 않고는 결코 전쟁이 끝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일본은 대동아 전쟁 당시 600만의 군대를 유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600만 일본군은 소련과 대치하고 있던 관동군, 중국 침략군, 그리고 미얀마전선과 태평양 전선 등 4개의 전선에 투입되었는데, 이 가운데 많은 병사들이 조선 출신이었다.

1941년 일본이 영국과 미국에 선전포고를 하고 본격적으로 동아시아의 신질서 건설작업에 나서면서 일본은 보다 효과적인 전쟁 수행을 위해 내선일체 캠페인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내선일체란 일본 열도를 뜻하는 내지(內地)와 조선이 하나라는 뜻이다. 그 결과 학교에서 조선어 교육이 금지되고 한글로 발간되는 모든 신문과 출판물들이 폐간되거나 소각되었으며, 창씨개명과 정신대 동원운동, 지원병 운동 등이 강력하게 전개되었다.

이 같은 내선일체 동화작업은 보다 효과적인 전쟁동원을 위한 목적에서 시작된 것이긴 했지만 식민지 주민을 본국 주민과 동등하게 대접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조치였으며, 많은 조선인들은 이에 감동하여 자발적으로 일본의 전쟁을 위해 협조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즉 당시 대다수 조선인들은 우리가 일본국민이라는 자부심을 강하게 지니고 있었으며 따라서 싫지만 황국신민으로서의 의무를 행하기 위해 군대에 자원입대하고 산업전선에 동원되었던 것이다.

1930년대 이후 일본은 군사독재체제로서 비정상적인 의사결정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대한민국의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등으로 이어진 군부정권과 비슷한 시기였으나 그 야만성으로 보면 대한민국의 군사독재 시대보다는 훨씬 나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어쨌든 1930년대와 1940년대의 일본 (조선, 대만을 포함한)에서는 군국주의에 반대하는 내부의 반체제 운동도 있긴 했지만, 대체로 전쟁수행을 위해 대일본제국의 모든 국민들이 단합하여 고통을 함께 하던 시기였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일본에 의해 피해를 입었다는 종군위안부나 징용피해자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그들이 마치 이전에는 굉장한 선진국에서 인간적인 삶을 영위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일본에 의해 인권을 유린당한 듯한 어조로 말하고 있는데, 이는 당시 현실을 감안하지 않은 부당한 주장이다. 그들이 겪은 고통과 비인간적인 처우는 충분히 비극적이긴 했지만 당시는 모든 사람들이 그만그만한 비극적인 삶을 영위한 시대였고, 게다가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보다 못하게 취급되는 전쟁기였다. 그런 시기에 전쟁터에까지 끌려가서 살아남았으면 그것 자체만으로도 다행인 것이다.

즉 피해라는 것은 상대적인 개념으로서, 인권이니 전쟁피해배상이니 하는 말들은 본질적으로 인권이 보장되는 인간다운 사회에서 살았던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말이지 미개한 사회에 속한 주민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개념이라고 하겠다. 매년 찾아오는 보릿고개마다 사람들이 굶어죽고 전염병 한번에 수많은 사람들이 떼죽음을 당하기도 하던 시대에 전쟁에 끌려갔거나 몇 달 동안 원치 않는 위안부 생활을 겪었다고 해서 그런 인권침해를 오늘날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일본을 비난하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21세기 개명천지인 지금에 와서도 가난한 후진국에 사는 주민들의 생활수준이라는 것은 프랑스나 미국의 강아지에도 훨씬 못 미치며, 따라서 그들의 인권이라는 것도 프랑스 강아지에게 보장된 개권보다 못한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개를 때리면 동물학대죄로 감옥에 가야 하지만 미개한 사회에 속한 여자나 어린아이들은 힘 있는 자들에 의해 목숨을 잃더라도 아무런 하소연을 못하는 일이 많지 않은가.

대동아 전쟁기에 일본군인들이 잔혹했다는 점은 충분히 수긍이 간다. 하지만 한국과 중국이 그러한 일본의 행위를 전쟁범죄라고 기회만 있으면 비난한다는 것은 우스운 얘기다. 이는 그것이 범죄인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니라 똥 묻은 개가 재 묻은 개를 나무랄 자격이 있는가 하는 해묵은 문제이다.

한국의 경우, 미국이 돈 몇 푼 주겠다고 하니까 아무 관련도 없는 베트남에 군대를 보내 무고한 양민을 헤아릴 수 없이 학살한 것이 불과 30년 전의 일이다. 당시 한국군대가 얼마나 잔혹했던지 베트남 사람들은 따이한이 온다고 하면 울던 아기도 울음을 뚝 그치고 공포에 떨었다고 한다. 또한 한국군인들은 어린 아이들에게 사탕을 주겠다고 불러놓고 장난삼아 쏴 죽였다고도 한다.

이처럼 한국군의 잔학상을 기록해놓은 자료는 헤아릴 수 없이 많고,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군에 의해 몰살당한 마을들마다 비석을 세워 따이한들의 잔학 행위를 잊지 말자고 다짐하고 있다. 미군은 베트콩이 있을 법한 마을에 들어가 사람들을 죽일 필요가 있을 때면 한국군을 이용했다고 한다. 당시 5년 남짓한 월남참전 기간동안 한국군이 학살한 베트남 주민의 수는 3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저 멀리에서 따이한(한국군)들이 우리를 부르며 손짓을 했다. 그들은 손에 사탕을 한 움큼 쥐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먼저 받으려고 달려갔다. 그러나 우리가 가까이 가자 손에 사탕을 쥐고 있던 따이한은 웃으면서 총을 들더니 맨 앞서 달려오던 아이의 머리에 사격을 했다. 그렇게 앞서간 아이들 서너 명이 죽었다. 나는 죽어라고 도망쳤다. 저것들이 과연 인간인가 하고 몸서리를 치면서 달렸다. 우리는 나중에 커서 반드시 한국에서 온 저 악마들에게 복수할 것이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아는 후배 하나가 군대 갔다가 올해 제대했는데, 자기 부대장이 늘상 자랑처럼 하는 말이 베트남전 당시 자기 부대가 한마을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주민들 전부 총 쏴서 싸그리 죽여버렸다는 겁니다. 그들은 심지어 수녀까지 죽였다고 합니다.”

이런 종류의 증언들은 베트남이든 남한에서든 몇 사람만 붙잡고 물어보면 흔히 들을 수 있는 것들이다. 아마 군대 생활의 경험이 있는 한국 남자라면 참전군인들로부터 숱하게 들었을 것이고 지금 와서는 별로 놀랍지도 않은 내용인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 학살한 일은 차치하고라도 한국전쟁 때 국군과 인민군은 또 얼마나 많은 무고한 양민을 학살했던가. 베트남에 가서 한 짓은 모두 한국전쟁 때의 연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엔 빨치산들이 많아서 산세가 험한 지역은 '낮엔 대한민국 밤에는 인민공화국'이 되었다. 주민들에게도 그렇게 아무한테나 협력하는 것이 유일하게 살아남는 길이었다. 국군은 인천상륙작전 이후 인민군 점령지를 회복해가면서 이런 양민들을 모두 빨갱이 협력자라고 학살했던 것이다. 학살은 전국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곳에서 자행되었으며 이렇게 국군의 손에 죽어간 사람은 최소한 수십만에 이른다.

그러고 보면 한국 사람들 참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자신들은 그렇게 자기 국민 수십만을 학살해놓고도 얼마 전에는 미군이 피난 가는 사람들 몇 명 죽였다고 백악관 앞에서 시위를 하고 미국 정부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소위 '노근리 미군학살사건' 이라는 것인데 과연 그런 '사소한' 학살 사건에 그토록 많은 관심을 가지고 미국 정부의 사죄를 받아내려는 사람들이 한국군이 저지른 학살 사건에는 왜 그렇게 관심이 없는지 모르겠다. 한국 전쟁 이전에도 미군과 한국군은 제주도에서 전체 주민의 3분의 1 이상을 학살한 바 있으며, 여순 반란사건을 진압하면서 수많은 전라도 지역의 양민을 학살한 일도 있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인들은 이처럼 스스로가 저지른 범죄 행위들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는다.

더 최근의 일로는 1980년 광주항쟁 때의 일도 있다. 당시 광주에 진주한 계엄군들은 "현재 광주 시내를 간첩들이 장악하고 있다"는 식의 터무니없는 교육을 받고 들어와 양민들을 학살했다. 그들은 총검술과 사격술 연습하듯이 광주시민들을 죽였다. 이것이 불과 20년 전의 일이다. 이런 나라가 과연 60년, 100년 전 발생했던 전쟁에서 불가피하게 자행된 인권유린을 근거로 일본을 욕할 자격이 있을까? 일본은 과거 미개하던 군국주의 시절 침략전쟁을 하면서 남의 나라 사람도 많이 죽였지만 최소한 패전 이후에는 이성을 되찾고 인권이 보장되는 문명국이 되었다. 반면 한국은 아직도 아들딸 죽이고도 2개월만 지나면 풀려 나와서 버젓이 돌아다닐 수 있는 미개사회라는 사실을 알아야만 한다. 남의 나라 욕하려면 적어도 최소한의 주제파악은 필요하다.

중국은 또 어떤가. 양민 학살과 침략에 관한 한 중국은 일가견이 있는 나라다. 사실 그런 사정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은 일본의 과거사에 대해 언급할 때에도 조용한 목소리로 시늉만 내는 게 아닌가 싶다. 중국 공산당은 1949년 대륙을 통일한 뒤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티벳과 위그루족의 나라를 침략해 정복했을 뿐 아니라, 아직까지도 그 지역의 독립운동가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고 있다.

1950년 중국은 '제국주의의 위협으로부터 티벳을 해방한다'는 개도 웃을 명분을 걸고 평화로운 티벳을 침략, 500만의 인구 중 절반을 학살했다. 중국은 티벳을 점령한 뒤 1964년에는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인도까지 정벌군을 보냈으나 인도군의 치열한 반격에 못 이겨 쫓겨난 전력도 가지고 있다. 또한 1979년에는 30만 대군과 800여대의 항공기를 동원해 베트남을 침략해 전면전을 벌이기도 했다. 다행히 인도와 베트남은 강력한 군사력을 지닌 국가였기 때문에 중국의 침략을 막아낼 수 있었지만, 만약에 이들 지역마저도 중국의 손아귀에 넘어갔다면 오늘날 중국은 인도양에서 태평양에 이르는 엄청난 대제국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과거 중국이 저지른 이 같은 침략과 학살에 대해 사과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1960년대 강청 등을 내세워 모택동이 자행한 친위 쿠데타, 소위 문화대혁명 때에는 손에 모택동 어록을 쥔 미치광이 홍위병들이 전국을 돌며 수백만의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했다. 또한 1989년에는 천안문 광장에서 발생한 민주화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2000명의 시민을 학살한 나라가 바로 중국인 것이다. 이런 나라가 일본 총리의 신사참배를 문제삼아 비난 성명을 내고, 중일전쟁 때 일본이 자국민을 학살했다고 선전해대고 있으니 중국이라는 나라는 참으로 얼굴이 두꺼운 것 같다.

일본이 일으킨 전쟁이라는 것도 그렇다. 1895년 청일전쟁에서 시작해 러일전쟁, 중일전쟁에 이르기까지 태평양 전쟁 이전 일본이 개입한 전쟁들은 그저 세계 어디에서나 일어나고 있던 일상적인 영토 따먹기였을 뿐이었다. 미국만 해도 20세기 초까지 네바다 오레곤 캘리포니아 텍사스 등의 지역을 사이에 두고 멕시코와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치렀다. 제국주의 시대의 논리라는 것이 힘 있는 나라는 많은 지역을 먹는 것이고 힘이 없으면 이미 차지한 땅도 빼앗기는 것이다. 그러다 전쟁에 지면 일본처럼 전범국이 되어 조용해 죽어지내는 것이고 이기면 승전국이 되어 한몫 잡고 큰소리치며 사는 것이다. 일본의 죄라면 그저 졌다는 거 그거 하나뿐이라 하겠다.

메인 콘텐츠
통계로 보는 일제시대 옛날사진 모음 친일파를 위한 변명 [목차](전문 게재) 대한민국 이야기 [목차](전문 게재) 동아일보 한국어로 번역된 일본 중학교 역사교과서 대한제국의 황실재정 독도 바로 알기 화해를 위해서_박유하(일부발췌) 근대사 연표 경향신문